보이스피싱에, 리딩방에… 연간 사기 피해액 27조원

지난해 국내 범죄 피해자 3명 중 1명은 사기 피해자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이스피싱, 투자리딩방 등 치밀한 '각본'을 기반으로 다중을 상대로 한 범행이 늘어난 여파다. 사기가 더 이상 피해자 개인의 불운이 아니라 사회적 신뢰를 위협하는 심각한 범죄 로 자리 잡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사기 피해자 수는 66만5924명으로 1년 만에 21만8373명(48.8%) 증가했다. 전체 범죄 피해자 175만여 명 가운데 약 38%가 사기 피해자였다. 사기 피해자 비중은 2019년 19%에서 최근 5년 사이 2배로 치솟았다. 반면 사기를 제외한 나머지 범죄 피해는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다. 비(非)사기 범죄 피해자 수는 지난해 109만명을 기록해 5년 전보다 16% 줄었다.

피해액 규모를 보면 사기범죄의 심각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해 사기로 인한 재산 피해액은 27조7602억원으로 전년보다 50% 급증했다. 전체 범죄 피해액 약 36조원 중 77%가 사기에서 비롯됐다. 사실상 범죄로 인한 경제적 손실 대부분이 사기와 직결된 셈이다.

최근 사기범죄는 개인의 거짓말과 공갈 수준을 넘어 조직적으로 '각본'에 따라 움직이는 양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피의자가 특정된 사건 가운데 공범이 11명 이상인 사례는 지난해 2383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2023년 925건 대비 2.6배 증가한 규모다. 보이스피싱이나 투자사기 조직처럼 치밀하게 피해자를 속이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뜻이다.

다른 특징은 범죄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사기 사건이 늘고 있다는 점이다. 피의자 신원을 알 수 없는 사건은 2023년 8296건에서 지난해 1만3461건으로 62% 늘었다. 이는 범죄 수법이 점점 디지털화·익명화하면서 수사기관의 추적을 따돌리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에 반해 사기죄 처벌은 실제 피해 규모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볍게 부과되고 있다. 지난 1월 대법원이 인천 미추홀구에서 세입자 191명을 속여 전세보증금 148억원을 가로챈 남 모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한 게 일례다.

박찬걸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범죄 이득액은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과 '50억원 이상'으로만 나뉜다. 이를 보다 세분화하고 형량도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