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칼럼] 독일 전차군단의 부활과 원·달러 환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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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호 우리은행 투자상품전략부 이코노미스트 올해 유로화 강세에 기인한 달러 약세가 두드러져트럼프의 입에 지배당하고 있는 금융시장에서 유로화의 강세가 고무적이다. 트럼프 정책과 강달러는 같은 의미로 통용될 것이라는 전망이 무색하게, 올해 들어 달러지수는 약 4.5% 하락했고 유로화는 약 5.5% 가까이 상승했다. 유로화는 달러의 가장 중요한 거래 상대방 통화(counterpart currency)이자 미국과 독일의 채권금리 스프레드에 민감하게 움직이는 통화이다. 따라서 유로화가 달러 대비 반등한 현상에는 미국과 독일의 채권금리 스프레드 축소가 자리잡고 있어, 양 국가의 금리 환경을 살펴보는 것이 달러와 유로화의 향방을 전망해보는데 핵심적이라고 볼 수 있겠다. 연준이 올해 기준금리 인하폭을 확대하기는 부담될 것으로 예상먼저 미국을 살펴보자. 코로나19 이후 최근까지 돋보적으로 강한 경제 성장을 이어오던 미국 경제에 대한 침체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금융시장을 뒤흔드는 가운데, 경기침체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그의 말 한마디에 금융시장은 앞으로 닥칠 경기침체를 걱정하면서, 미국 채권금리는 연초대비 30bp(1bp=0.01%포인트) 가량 하락하면서 빠르게 내려왔다. 연준이 공개한 작년 12월 점도표에서 올해 기준금리 인하는 2회(총 50bp 인하)로 제시되어있으나, 하루 앞으로 다가온 3월 FOMC에서 과연 연준이 금융시장의 기대에 화답할 수 있을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경기침체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는 점은 금융시장의 기대를 지지하는 부문이다. 다만 경기 변동의 이론적 측면에서 조금 더 정교하게 살펴보자면, 트럼프의 관세정책이 경제의 수요와 공급 부문 중 어느쪽에 먼저 충격을 가하면서 경기침체로 진행될 것인가에 따라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물가와 금리는 경제의 성장성에서 파생되는 함수로서 경기흐름과 동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공급측면에서 충격이 발생하는 경기침체의 경우에는 경기 역행적(경기 하락, 물가&금리 상승)으로 발현된다. 따라서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공급측면의 파이 자체를 줄이는 쪽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물가는 더 이상 낮아지지 않거나 혹은 재반등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연준이 경기 흐름을 예단해서 선제적으로 기준금리 인하폭을 확대해가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지난주에 공개된 2월 소비자물가와 생산자물가 상승률은 1월에 비해 모두 둔화되었고, 시장의 컨센서스도 하회하면서 물가에 대한 불안감을 덜어주었다. 하지만 이번 데이터는 트럼프 관세 효과가 반영되기 이전의 데이터이다. 1월 물가 지표 안정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의 반응이 미지근한 이유이다. 독일의 천문학적 재정지출이 가시화되고 있으나 경기 반등 기대는 아직 약해유럽 경제의 핵심 축인 독일을 살펴보자. 독일에서 새 총리(프리드리히 메르츠, 기독민주당)가 당선되었다. 그는 유럽 국가들 중에서 재정준칙을 가장 엄격하게 지켜온 독일의 경제 철학을 깨고, 대규모의 재정지출을 통한 경기 반등을 이끌어 내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독일에게 국방비 부담을 요구하는 트럼프의 압박과 맞물리면서, 채권 발행 이슈와 경기 반등 기대감으로 올해 독일 10년물 국채금리 50bp 상승을 이끌어 냈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경기침체 우려를 높이면서 채권금리 하락을 이끄는 동안 독일에서는 경기 반등 기대감과 수급 이슈에 따른 채권금리 상승이 동반되었으니, 미국과 독일의 채권 금리 스프레드가 빠르게 줄어들면서 유로화가 반등하고 달러지수가 반사적으로 하락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특히 독일에서 새 총리가 추구하는 대규모 재정지출(향후 12년간 5천억 유로, 약 791조원)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부채 제동장치가 명시되어 있는 기본법(헌법) 개정이 필요한데, 법 개정을 위한 정당간의 정치적 합의도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연방정부의 2024년 예산이 4,657억 유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진행될 재정정책은, 매년 재정지출을 약 8~9% 확대시키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독일의 재정지출이 유로존의 경기 반등을 얼마나 이끌어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아직 확답하기 힘들어 보인다.
유로존 국가들이 전통적으로 역내 교역의 비중이 높은 편이지만, 전통 기계산업에 강점이 있는 독일의 재정효과가 주변국으로 확산되는 것을 기대하기에는 산업 구조적 측면에서 유로존 내 다른 국가들과 차이점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때문인지 독일의 천문학적 재정지출이 가시화되어 가고 있지만, 독일 채권시장을 제외한 유로존의 실물 경기 반등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미지근한 것 같다. (올해 성장률 전망 컨센서스: 0.9%) 상승 경계감을 놓을 수 없어 보이는 원/달러 환율의 답답한 흐름올해 대외환경에서 달러지수와 유로화의 힘겨루기가 역동적으로 변하는 과정에서도, 원화의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답답한 모습을 보였다. 달러지수가 유로화 강세로 인해 103포인트까지 낮아지는 과정에서도 원·달러 환율은 1,440원대 레벨을 깨고 내려가지 못했다. (연초대비 달러지수 4% 하락, 달러대비 유로화 가치 5% 상승, 달러대비 원화 가치 1.1% 상승) 대외에서 발생한 달러 약세 효과를 원화가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다는 것으로 해석되는데, 다가올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반도체, 철강, 자동차 등 한국의 주력 수출 품목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과 탄핵안 판결 선고를 앞둔 정치 불안정 등이 부담요인으로 작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는 미국 연준이 올해 기준금리를 2회정도 인하해주거나 그 이상으로 인하폭을 더 늘려주고, 독일에서는 재정지출이 순조롭게 진행되며 유로존의 실물 경기 지표들이 반등하는 모습이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다. 두가지 상황이 모두 충족되지 않는다면, 미국 채권금리 재상승과 독일 채권금리 조정이 진행될 수 있고, 이는 양국의 금리 스프레드 확대로 이어지면서 유로화 하락과 달러의 반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올해 달러지수가 낮아지는 동안에도 레벨을 제대로 낮추지 못한 원·달러 환율이, 달러지수가 반등하는 경우에는 어떻게 반응할지 경계감을 놓을 수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