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단위 피해에도 금융사기 '솜방망이' 처벌…형량 왜 낮을까
고객들을 속여 1조원대 코인을 받아낸 뒤 돌연 출금을 중단한 가상자산 예치 서비스업체 하루인베스트먼트 대표를 법정에서 피습한 50대 남성 A씨가 징역 10년을 구형 받았다.
그러나 A씨가 하루인베스트의 사기 피해자로 알려지면서 함께 피해를 입은 투자자들이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의 선처를 요청했다. 금융사기 특성상 피해금액을 환수받기 어렵고, 솜방망이 처벌을 받는 경우가 많은 탓에 사적 제재가 가해진 것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금융사기 범죄자에 대한 형량이 낮은 이유는 피해자가 투자를 선택하기 때문에 피해 금액 대비 형량이 낮아지는 데다 재판부가 재산 범죄를 상대적으로 가볍게 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검찰은 전날(19일) 오전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김정곤) 심리로 열린 A씨의 살인미수 혐의 결심공판에서 징역 10년을 구형했다.
이에 대해 이민석 금융피해자연대 고문변호사는 구형 직후 기자와 만나 "통상적인 살인미수 구형량보다는 낮은 구형을 받았다"며 "피고인이 하루인베스트 사기 피해자인 점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8월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5부(부장판사 양환승) 심리로 열린 8차 공판기일에서 방청 도중 피고인석에 앉아 하루인베스트 대표 이모씨를 흉기로 공격한 혐의를 받는다.
이씨는 우측 목 부위에 출혈을 입어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사 결과 A씨는 하루인베스트의 입출금 중단 사태로 피해를 입은 배상 신청인단 중 한 명인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A씨가 보유하던 비트코인 100여개는 하루인베스트의 '러그풀'(먹튀) 사태로 휴지조각이 됐다. 현재 비트코인이 1개당 약 1억2000만원임을 감안할 때 약 120억원의 사기 피해를 입은 셈이다. 체포 당시 A씨는 "손해에 불만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는 취지로 경찰에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건이 발생한 건 투자 사기를 당해도 피해액을 환수받기 어렵고, 대부분 솜방망이 처벌을 받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법률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하루인베스트의 경우 아직 선고가 이뤄지진 않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법정형과 실제 선고형의 괴리가 커 피해자들에게 입힌 피해 규모 대비 낮은 형량이 매겨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가상자산 테라·루나 폭락 사태의 핵심 인물인 권도형 전 테라폼랩스 대표도 형량이 많은 미국보다 한국으로 송환되기를 희망했다. 한국은 경제사범 최고 형량이 약 40년인 반면, 권씨 혐의가 법원에서 모두 인정될 경우 미국에서 받을 형량은 130년에 달한다.
한상준 법무법인 대건 변호사는 "투자사기의 경우 투자를 하냐 마냐에 대한 선택을 피해자가 한다는 점 때문에 피해 금액 대비 형량이 아주 낮은 편"이라며 "법원이 생명·신체에 관한 범죄를 중하게 보는 것과 달리 재산범죄는 상대적으로 가볍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최근 들어 법원 내부적으로 양형 기준을 높이는 등 시도를 하고 있지만 아직 역부족"이라면서 "법정형 자체가 높지 않다보니 이 자체를 손 볼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투자사기는 특성상 피해액이 크고, 피해자의 수가 많지만 개별 범죄의 형량을 가산하지 않는 형사소송법의 특성이 솜방망이 처벌을 부추기고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
한국은 여러 명에게 범죄를 저지른 경합범에게 가장 높은 혐의에 대해 형량을 50% 더하는 '가중주의' 원칙을 적용한다. 반면 개별 범죄의 형량을 단순 합산하는 '병과주의'를 채택한 미국은 대형 금융사기의 경우 징역 100년 이상이 선고된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방민우 법무법인 민 변호사는 "여러 명에게 큰 피해를 줘도 가산이 되지 않아 형량 자체가 적을 수 밖에 없다"며 "수백억대 사기를 치더라도 이익금을 남겨 10년가량 살고 호의호식하는 사례가 반복되는 이유"라고 말했다.
이어 "형량 합산을 가능하게끔 하는 것은 형사소송법의 틀 자체를 바꿔야 해 쉽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다량의 피해자를 발생시킨 사기 사건의 경우 형량을 높이는 등 입법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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