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기관 사칭에 속아 코인까지 송금…피해자가 '사기 공범' 전락
#1. 30대 남성 A씨는 최근 검찰·금감원·은행연합회 등을 사칭한 전화에 속아 가상자산 송금을 강요받았다. 사기범은 "계좌가 명의도용돼 범죄에 연루됐다"며 소명을 요구했고 구속 수사 대신 약식 조사를 하겠다며 모텔로 이동하라고 지시했다.
이어 A씨의 현금과 다른 보이스피싱 피해자의 피해금을 합쳐 가상자산을 구매하게 한 뒤 이를 해외 가상자산 거래소 계좌로 송금하도록 했다. 이 과정에서 A씨는 가상자산을 직접 매수해 사기범에게 송금하면서 사기 범행에 협조한 가해자로까지 취급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됐다.
#2. 또 다른 30대 남성 B씨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 광고를 통해 '저금리 전환 대출'이라는 상품에 속았다. 광고를 보고 대출 상담을 신청하자 사기범은 B씨에게 "가상자산 거래 내역을 만들면 신탁대출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내 B씨 계좌로 자금이 입금됐고 그는 사기범의 지시에 따라 인증을 진행했다. 그러나 실제 대출은 진행되지 않았고 해당 계좌는 보이스피싱 조직이 불법 자금 이동에 이용하면서 사기이용계좌로 정지됐다. 선의의 피해자가 하루아침에 금융거래가 차단되는 이중 피해를 입은 것이다.
29일 뉴시스 취재를 종합하면 보이스피싱 범죄가 진화하면서 사기 피해자에게 현금 대신 가상자산을 직접 송금하도록 유도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 특히 피해자가 범죄 조직의 지시에 따라 코인을 매수·송금하면서 의도치 않게 '가해자'로 전락하는 경우까지 발생하고 있어 사회적 우려가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송석준 의원실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보이스피싱 조직이 피해금액을 편취한 건수는 1만4707건으로 전년 동기(1만1734건) 대비 25.3% 증가했다.
같은 기간 가상자산 편취 피해는 64건에서 420건으로 무려 6.6배 급증했다. 이는 범죄 조직이 기존의 현금 인출책이나 계좌 송금 방식에서 벗어나 추적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가상자산을 악용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보이스피싱 피해자들을 자금 세탁처로 이용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이들은 피해자에게 자산 검수 명목으로 금융정보 제공을 요구하거나 가상자산 환전 후 자금 전달을 전달하라는 방식으로 자금 세탁 사기에 끌어들인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다수의 보이스피싱 사례에서 피해자들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범죄에 연루되는 경우가 많다"며 "피해자이면서 자금 세탁에 이용 당해 사기이용계좌 명의자가 된다"고 말했다.
이민석 금융피해자연대 변호사는 "한 사람에게 여러 종류의 가상자산 지갑을 만들게 한 다음 그 계좌를 활용해 지속적으로 자금 세탁을 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며 "현금 계좌를 추적하는 일반 보이스피싱과 달리 수사기관의 추적을 피하기 용이하고 자금도 은닉하기 쉽다"고 말했다.
비대면 금융환경과 코인 투자 경험이 많은 2030 청년층을 대상으로 이 같은 범죄 피해자가 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8월 기관 사칭형 보이스피싱 범죄에서 피해자의 절반 이상인 52%가 2030 청년층에서 발생한 것으로 조사됐다.
방민우 법무법인 민 변호사는 "가상자산에 투자하는 세대는 주로 젊은 층이 많다"며 "현금 대신 가상화폐를 전달·송금하는 업무에 엮여 이유도 모른 채 피의자로 엮이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더불어민주당과 정부는 지난 25일 '보이스피싱 태스크포스(TF) 발대식 및 당정협의'를 열고 ▲범정부 통합대응단 설치 ▲사기죄 법정형 상향 ▲금융회사의 범죄 예방 및 범죄 대응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담 인력과 물적 설비 의무화 등을 논의했다.
당정은 보이스피싱 의심 정보를 공유·활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플랫폼'을 구축하는 등 범죄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도 조속히 구축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보이스피싱 범죄의 사각지대를 없애기 위해 가상자산으로 편취된 피해금을 환급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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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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