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하고 인내심 많은 사람"…여의도 증권가서 뜨는 스펙 [AI가 일한다 下]

"지금 여의도에 필요한 인재는 'AI에게 잘 질문하는 사람'입니다. 투자자도 예외는 아닙니다."
금융권의 생성형 인공지능(AI) 도입이 늘면서 경쟁력의 초점은 기술에서 사람의 역량으로 옮겨가고 있다. 내부 업무 효율화부터 대(對)고객 서비스까지 적용 범위가 넓어지는 가운데, 금융사들은 "AI와 협업할 수 있는 인재 없이는 산업 경쟁력도 없다"고 강조한다. 전문가들은 나아가 "투자자 역시 AI를 잘 다룰 줄 아는 것이 핵심 투자 역량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한경닷컴>은 은행·증권·자산운용 전문가들에게 AI 시대 금융회사가 마주한 과제가 무엇인지 물었다. 어떤 방식으로 AI를 도입·활용해야 하고 무엇이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지에 대한 답도 들었다. 업권별로 시각은 달랐지만 공통된 화두는 결국 '사람'이었다.
조영서 KB국민은행 AI·DT추진그룹 부행장(사진)은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챗봇'이 아니라, 대화 맥락을 기억하고 필요 작업을 직접 실행하는 '에이전트'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에이전트를 "개인 비서처럼 과거 대화와 투자자 정보를 기억하고, 스스로 판단해 내부 시스템을 불러 일을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국민은행은 2023년 내부 개념 검증을 거쳐 기반을 마련했고, 지난해에는 전 부서가 함께 쓰는 AI 플랫폼을 구축했다. 각 부서가 따로 실험하지 않고 통일된 방식으로 개발·운영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가장 먼저 AI를 적용한 분야는 영업 현장이다. 프라이빗뱅커(PB)·RM(기업고객 담당자)에게 시황 확인, 상품 추천, 투자자 분석, 포트폴리오 관리, 사후 관리 등을 묶은 에이전트를 배포했고, 향후 여신심사와 리스크 관리로 확대할 계획이다. 내년 말까지 그룹 전반에 약 280개의 에이전트를 운영한다는 목표다.
조 부행장은 'AI 시대' 인재상으로 '친절하고 인내심 많은 사람'을 꼽았다. AI 활용은 기술 자체보다 사람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는 "결국 중요한 건 알고리즘의 성능이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질문하냐는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은 이런 질문 법(프롬프팅)에 대한 권장 템플릿을 책으로 만들어 전사 교육을 추진하고 있다. 문장은 짧고 간결하게, 주어·목적어·서술어를 명확하게, 수치와 시점을 구체적으로 담아야 한다는 등의 매뉴얼이다. 조 부행장은 "AI는 죄가 없다. 답이 엉뚱하다면 질문이 잘못된 것"이라면서 "친절하고 인내심을 가진 사람이 질문도 섬세하게 할 수 있고, 결국 AI와의 협업에서 성과를 낸다"고 말했다.

김기현 키움투자자산운용 대표(사진)는 서울대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최고경영자(CEO) 과정을 수강하며 경영과 학업을 병행하고 있다. 경영자 스스로 AI를 이해해야 조직의 활용 방향을 제시할 수 있을 거란 판단에서다.
그는 "금융 데이터는 입력·출력이 뒤섞여 있고 완전무결성이 요구된다"며 섣불리 AI를 도입하기보단 점진적으로 적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내부 업무 프로세스부터 자동화하고, 직원 개인의 업무 역량을 AI로 보강해 조직 전체의 운용 역량을 단계적으로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현재 직원 90여명이 사내 지원으로 AI 집중 교육을 받고 있다. 보고서 작성·요약, 위험 관리 등 일부 업무부터 적용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이를 위해 지난 8월에는 신창호 LG에너지솔루션 AI TF팀장을 회사의 혁신추진팀으로 영입했다.
대고객 상품 측면에선 소비자 선호 분석을 통한 상품 설계가 현실적이라고 봤다. 로보어드바이저식 'AI 운용'은 금융 데이터 특성상 구현 난도가 높아 시간이 필요하다고 평가했다. 인력 영향에 대해선 "단순 반복은 줄겠지만 즉시 대체로 보긴 어렵다"며 금융 업무 이해가 깊은 고참급이 AI를 잘 써야 조직 성과가 난다고 강조했다. 외부 완제품에 의존하기보다 자사 업무에 맞춘 내재화가 지속 가능하다는 얘기다.
김 대표는 "메인은 금융, 수단은 AI"라며 "업(業)에 대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AI를 결합해 '맞춤복'처럼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빠른 기술 변화를 감안할 때 향후 2~3년이 승부처"라는 분석이다.

삼성전자와 신한은행에서 AI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이택헌 이사는 지난해 키움증권에 합류해 AI 서비스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이택헌 키움증권 AIX팀 이사(사진)는 "AI에게 잘 질문하는 능력이 새로운 금융 문해력"이라며 "좋은 모델을 써도 결국 마지막 10%는 사람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완전 자동화보다는 AI가 80~90%까지 끌어주고, 나머지는 현업 전문가가 검증하는 구조가 현실적이라는 설명이다.
키움증권이 지향하는 AI 대고객 서비스는 초보 투자자가 타깃이다. 이 이사는 "챗봇 '키우Me' 등을 약 6개월간 가동하면서 느낀 것은, 요즘 투자자들은 챗봇에 검색어를 입력한다기보다는 챗GPT와 대화하듯 질문한다는 점이다. 챗GPT 같은 서비스에 익숙해진 영향일 것"이라며 "정형화된 FAQ(자주 묻는 질문)만 준비해선 대응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이에 키움증권은 단순 질답 수준을 넘어 능동적으로 맞춤형 답변을 제시하는 '에이전트형 응대'를 도입해, 답변 성능을 계속해서 고도화하고 있다.
다만 이 이사는 "증권사가 아무리 AI를 고도화해도 소비자가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면 절반의 성공에 그칠 뿐"이라고 강조했다. 소비자가 맥락과 기간, 수치를 담아 정확히 물을 줄 아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이 이사는 "자신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해서 AI가 맥락을 파악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하다. 기간과 수치 등도 정확히 짚어줘야 한다"며 "제대로 된 AI 활용법도 투자 역량인 셈"이라고 말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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