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무역협상 타결 - 최악 피했지만 차악 만났다③] "조선업·에너지·반도체로 돌파하라"
![© Reuters. [韓美 무역협상 타결 - 최악 피했지만 차악 만났다③] "조선업·에너지·반도체로 돌파하라"](https://i-invdn-com.investing.com/news/LYNXNPEB7Q0U9_L.jpg)
한화오션이 인수한 미국 필리조선소 전경. 한미 조선 협력의 상징이다. 사진=한화오션
교착 상태에 빠졌던 한미 무역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된 가운데 한국경제의 생존을 위한 다양한 가능성 타진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무엇보다 협력의 고차 방정식을 유지하면서 서로 윈윈할 수 있는 한국의 카드를 내세워야 한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절박함, K조선을 협상 테이블로
한국은 미국이 요구해온 25%의 상호관세율을 15%로 낮추는 대신 3500억 달러 이상의 대미 투자와 1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에 합의했다. 이런 가운데 숨 가빴던 협상 막후에서 자동차나 반도체가 아닌 ’조선업’이 결정적 돌파구를 연 핵심 열쇠였던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협상의 이면에는 세계 최강의 해군력 유지를 목표로 자국 조선업 재건에 사활을 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절박함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미국 조선업은 20세기 후반 이후 쇠락을 거듭해, 이제는 군함 유지보수조차 버거운 실정이다. 한때 세계를 제패했던 상선 건조 시장 점유율은 0.1%대로 추락했으며 군함 건조 능력마저 한계에 부딪혔다. 버지니아급 공격 잠수함, 컨스텔레이션급 호위함 등 핵심 해군력 증강 사업은 수년째 지연되고 있고 건조 비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중국의 조선소 건조 역량이 미국의 230배에 달한다는 분석은 미국에 큰 충격을 주었다.
2차세계대전 이후 2024년까지 미국의 총 선박 건조량(왼쪽)과 2024년 중국의 국영조선소 CSSC와 나머지 조선소의 선박 건조량(오른쪽). 중국이 압도적으로 많다. 사진=CSIS
이런 가운데 중국의 해군력 팽창에 맞서야 하는 안보적 필요성과 함께, ’러스트 벨트’의 부활이라는 정치적 명분까지 더해지면서 조선업 재건은 트럼프 행정부의 최우선 과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부터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을 수차례 언급하며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이는 사실상 쇠락한 자국 산업 부흥을 위해 세계 1위 기술력을 가진 한국에 ’SOS’를 친 셈이다. 그리고 한국 정부와 협상단은 바로 이 지점을 파고들어 조선업 협력 카드를 단순한 산업 협력을 넘어, 관세 협상의 판도를 바꿀 ’전략적 지렛대’로 활용했다.
한국의 협상력은 LNG 운반선, 암모니아·수소 추진선 등 고부가가치·친환경 선박 시장에서 보유한 독보적인 ’초격차 기술력’에서 나온다. 실제로 현재 전 세계에서 운항 중인 LNG선의 대부분은 한국산이며, 복잡한 건조 기술과 경험은 중국 등 후발 주자들이 단기간에 따라오기 힘든 영역이다.
미국이 셰일가스 혁명 이후 주요 LNG 수출국으로 부상했지만 정작 이를 실어 나를 선박 건조 능력은 전무하다는 점도 한국의 협상력을 극대화했다. 이런 가운데 한국이 1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LNG 수입이라는 ’통 큰’ 선물을 안겨준 것은, 결국 K-조선이 건조한 LNG선이 그 가스를 실어 나르게 될 것이라는 계산이 깔린 정교하게 설계된 패키지 딜의 결과물이다.
이미 국내 조선업계는 구체적인 협력 방안을 제시하며 미국의 요구에 화답하고 있다. 한화오션은 미국 필리조선소를 인수해 미 해군 함정 유지보수(MRO) 사업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했으며 거제 사업장과의 연계를 통해 기술 이전 및 인력 양성을 추진할 계획이다. HD현대 역시 미국 정부 및 기업과 선박 공동 개발, 설계 지원 등 다각도의 협력 모델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오는 8월 중순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양국 정상이 이번 합의를 공식화하고, 조선업을 포함한 에너지, 첨단산업 분야에서의 포괄적인 협력 방안을 구체화할 전망이다. 벼랑 끝에 몰렸던 무역협상의 물꼬를 튼 K조선은 이제 새로운 한미 경제 동맹을 이끌어갈 핵심 동력으로 그 위상을 재정립하고 있다.
정부는 이미 마스가(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로 판을 흔든 바 있다. 단순히 돈을 푸는 방식이 아니라 한국의 핵심 역량인 조선업 기술과 인력, 운영 노하우를 통째로 이식해 미국의 오랜 숙원인 ’조선업 재건’을 돕겠다는 파격적인 제안이라 특히 시선이 집중된다.
세계 최고의 ’스마트 조선소’ 기술과 건조 역량을 보유한 한국의 협력 제안은 미국 입장에서 거부하기 힘든 매력이다. MASGA 프로젝트는 ▲한국 민간 조선사(HD현대, 한화오션 등)의 미국 현지 조선소 직접 투자 및 건설 ▲디지털 트윈, AI 기반 자동화 등 스마트 조선소 기술 이전 ▲숙련 인력 양성 및 공급망 구축 지원 등을 포괄한다. 이는 단순한 재정 지원을 넘어 미국의 산업 기반 자체를 되살리는 ’지속 가능한’ 협력 모델이라는 점에서 일본이나 EU의 투자 약속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실제로 일본이 약속한 5500억 달러의 투자 패키지는 상당 부분이 기존 투자 계획의 재포장이거나 실체가 불분명한 대출·보증으로 채워져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반면, 한국의 MASGA는 ’그린필드형(생산시설 직접 투자)’ 제안으로, 고용 창출과 산업 파급 효과가 훨씬 직접적이고 가시적이다.
물론 장밋빛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핵심 기술 유출에 대한 우려, 나아가 장기간에 걸쳐 막대한 투자가 필요한 미국 조선업 생태계가 과연 성공적으로 부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크기 때문이다. 여기에 몇몇 세부조항에 있어 현실성에 대한 문제도 여전하다.
미국은 LNG 수출길 활짝, 한국은 에너지 안보·미래 기술 주도권 확보
극적으로 타결된 한미 무역협상의 핵심 중 하나로 ’에너지’도 빼놓을 수 없다. 정부가 약속한 1000억 달러규모의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등 에너지 구매가 협상의 중요한 축이기 때문이다. 관세 인하를 위한 대가성 ’청구서’를 넘어, 양국 관계의 패러다임을 ’전통 안보 동맹’에서 ’미래 에너지 동맹’으로 전환하는 중대한 분기점으로 분석된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강력히 추진해 온 ’미국 우선주의 에너지 정책’과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망 확보가 절실한 한국의 이해관계가 완벽하게 일치한 ’전략적 거래’다.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 이번 합의는 막대한 대미 무역 흑자를 기록 중인 한국을 상대로 무역수지를 개선하는 동시에, 자국 셰일가스 산업의 핵심 수출 판로를 확보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다. 특히 미국은 골든패스(Golden Pass), 플레이크마인스(Plaquemines) 등 대규모 LNG 수출 터미널 증설을 2025~2026년 완공 목표로 추진 중이어서 한국의 대규모 장기 구매 약속은 늘어나는 생산량의 확실한 수요처를 확보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한국에게는 에너지 안보 강화라는 실질적 이익을 가져다준다. 중동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큰 지역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낮추고, 최대 동맹국인 미국으로부터 안정적으로 LNG를 공급받는다는 것은 국가 경제의 불확실성을 크게 줄이는 효과가 있다. 가스공사의 과거 장기계약들이 통상 15~20년에 걸쳐 이뤄진 점을 감안할 때, 이번 합의 역시 단발성 구매가 아닌 장기 공급 계약으로 이어져 양국 경제를 더욱 깊숙이 엮는 밧줄이 될 전망이다.
이 지점에서 미국의 에너지 수출을 한국의 조선 산업이 뒷받침하고, 또 그 과정에서 발생한 부가가치가 다시 양국 경제에 기여하는 강력한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다. 한미 양국이 단순한 자원 구매-판매 관계를 넘어, 생산(미국)-운송(한국)-소비(한국)로 이어지는 거대한 ’에너지 가치사슬’을 구축하게 되는 셈이다.
LNG 운반선을 반복생산 중인 한화오션 1도크 전경. 사진=한화오션
한편 한미 에너지 동맹은 비단 LNG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양국은 이미 탄소중립 시대의 게임 체인저로 꼽히는 차세대 에너지 시장을 함께 선점하기 위한 구체적인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이미 과거 체결된 양해각서(MOU) 등을 통해 SK, HD한국조선해양, 두산에너빌리티 등 국내 주요 기업들은 미국의 GE버노바, 엑손모빌 등과 손잡고 소형모듈원전(SMR) 개발 및 건설, 블루·그린수소 생산 및 유통, 암모니아 운반선 및 터빈 개발,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 상용화 등에서 구체적인 협력을 추진 중이다.
여세를 몰아 무역협상 타결은 이러한 차세대 에너지 분야의 협력에 강력한 추진력을 더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SMR 분야에서 미국의 원천기술과 한국의 원전 시공·운영 능력이 결합하고, 수소 경제에서 미국의 생산력과 한국의 저장·운송 인프라 기술이 시너지를 낼 경우 양국은 다가올 에너지 전환 시대의 기술 표준과 시장을 주도하는 확고한 위치를 점하게 될 수 있다.
반도체, 산업의 쌀
반도체는 더 이상 단순한 산업 품목이 아니다. 인공지능(AI), 양자컴퓨팅, 우주항공 등 미래 산업의 향방을 결정하고 국가 안보까지 직결되는 ’전략 자산’으로 봐야 한다. 미국이 반도체 칩과 과학법(CHIPS Act)을, 한국이 K칩스법을 통해 천문학적인 지원에 나선 것은 반도체 주권 확보가 양국 모두에게 사활을 건 과제임을 잘 보여준다.
특히 미국은 자국 중심의 반도체 공급망 재편을 국가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동맹국과의 협력을 통해 안정적인 첨단 반도체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이 거대한 구상에서 메모리 반도체 세계 최강이자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술 강국인 한국은 대체 불가능한 핵심 파트너다. 이번 무역협상 타결은 이러한 양국의 전략적 필요를 재확인하고, 협력의 걸림돌을 제거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한미 반도체 동맹의 가장 큰 강점은 양국이 상호보완적인 ’최강의 조합’을 갖췄다는 점이다. 미국은 엔비디아 (NASDAQ:NVDA), 퀄컴 (NASDAQ:QCOM), AMD 등 세계 최고의 팹리스(반도체 설계) 기업과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필두로 한 세계 최고의 반도체 제조 역량을 자랑한다. 미국의 설계 역량과 한국의 제조 역량이 결합할 때, 그 어떤 경쟁국도 넘볼 수 없는 ’기술 초격차’를 실현할 수 있다.
시너지는 이미 구체적인 투자로 현실화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텍사스주 테일러에 4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최첨단 파운드리 공장을 짓고 있으며, SK하이닉스 (KS:000660) 역시 인디애나주에 40억 달러 규모의 차세대 패키징 공장을 건설 중이다. 이는 단순한 기업 활동을 넘어, 한미 반도체 동맹의 핵심 기반을 미국 본토에 구축하는 ’전략적 서약’과도 같다. 한국 기업은 안정적인 시장을 확보하고, 미국은 자국 내에 첨단 반도체 공급망을 완성하게 되는 윈윈(Win-Win) 구조다.
미국이 AI 시대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는 한국의 HBM 공급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는 한국이 한미 기술 동맹에서 강력한 협상력과 주도권을 가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양국은 HBM을 시작으로 차세대 지능형 반도체(PIM), 시스템 반도체 등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공동 연구개발 및 기술 표준 제립에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다.
이 지점에 한국의 길이 보인다. 이재용 삼성전자 (KS:005930) 회장이 미국으로 날아가 관세협상 측면지원에 나섰다는 것 자체가 그 무거운 의미를 잘 보여준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7월 29일 서울 강서구 서울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SGBAC)를 통해 워싱턴으로 출국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우리는 이제 뉴노멀의 시대를 산다
이번 협상의 최대 성과는 무엇보다 통상 환경의 불확실성을 걷어냈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이 예고했던 25%의 보복적인 상호관세가 현실화될 경우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는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했다. 특히 자동차, 철강 등 주력 산업의 대미 수출 경쟁력에 치명타를 입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 EU와 동일한 15%의 관세율을 확보한 것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한 합리적인 결과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이는 ‘공짜’가 아니었다. 한국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함께 미국산 자동차·농산물 시장의 추가 개방, 1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등을 약속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일관되게 추진해 온 ‘미국 제조업 부활’과 ‘무역적자 해소’라는 목표에 한국이 적극적으로 기여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이 과거 자유무역협정(FTA)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의 산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관세율 자체보다 3500억 달러 투자라는 조건이 이번 협상의 핵심이라는 주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시장 개방을 통한 교역 확대라는 전통적 통상 정책을 넘어, 특정 산업의 공급망을 중심으로 한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이 새로운 통상 규범으로 자리잡는 순간이다.
나아가 이번에 합의된 대규모 투자는 한국이 미국의 대중국 견제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 전략의 핵심 파트너로 자리매김했음을 의미한다. 특히 3500억 달러 투자금 중 1500억 달러가 조선 협력에 투입될 것으로 알려지면서, K조선이 한미 경제 협력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는 미국이 자국 내 조선 산업 재건과 해군력 증강에 한국의 기술력과 생산 능력을 핵심 지렛대로 활용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자동차, 반도체, 배터리 등 다른 전략 산업 분야에서도 유사한 협력 모델이 이어질 전망이다. 한국 기업의 대미 직접 투자를 통해 미국 내에 생산 기지를 구축하고, 이는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제품으로 인정받아 관세 장벽을 우회하는 동시에 한미 양국의 경제 안보를 강화하는 효과를 낳게 된다. 결국 한국은 미국의 프렌드쇼어링(friend-shoring, 우방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 전략의 가장 중요한 허브 중 하나가 되는 셈이다.
미국과의 새로운 경제 동맹은 분명 한국 경제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전망이다. 우선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 대한 안정적인 수출 기반을 확보하고, 첨단 산업 분야에서 기술 협력을 강화하며,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경제적 입지를 다질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반면 리스크도 있다. 당장 천문학적인 대미 투자로 인해 국내 투자 여력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나아가 미국의 대중국 압박 전선에 깊숙이 편입되면서 최대 교역국인 중국과의 관계 설정이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미중 경쟁 구도 속에서 한쪽을 선택하도록 강요받는 상황이 현실화될 경우, 한국 경제는 심각한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결론적으로 한미 무역협상 타결은 한국 통상 외교의 새로운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미국 주도의 통상 질서에 적극적으로 동참해 실리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미중 갈등의 파고를 슬기롭게 헤쳐나가고 국내 산업의 피해를 최소화해야 하는 고차원의 전략적 줄타기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오는 8월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이 내놓을 구체적인 ‘투자 청사진’과 ‘산업 협력 로드맵’에 따라 한국 경제의 미래 명운이 갈릴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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