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하던 랩어카운트 계약, 올 2조 증가
올 들어 증권사의 일임형 랩어카운트 계약이 다시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선 프라이빗뱅커(PB)들과 소통하며 포트폴리오를 짤 수 있는 ‘지점 일임형 랩어카운트’가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2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월 일임형 랩어카운트 계약자산은 86조4065억원을 기록했다. 84조6984억원이던 작년 12월 대비 1조7081억원 늘었다. 계약 건수도 같은 기간 203만7640건에서 203만8564건으로 불어났다.
랩어카운트는 증권사가 알아서 적절한 금융상품을 골라주는 형태다. 자산운용사가 위탁받아 굴리는 경우도 있다. 편리함을 무기로 삼은 랩어카운트 계약자산은 2022년 5월 153조7614억원으로, 역대 최대를 찍었다. 그러다 레고랜드발 자금 경색과 채권 기반 랩어카운트의 돌려막기 문제가 터지며 꾸준히 순유출됐다. 2023년 10월엔 100조원 선도 무너졌다.
분위기가 바뀐 건 최근 금융당국이 돌려막기 사태에 대해 비교적 경징계를 내리면서다. 지점운용형 랩어카운트의 계약자산이 급증하는 추세다. 2020년 4조~5조원을 오가던 계약자산은 2023년 말 6조9729억원, 작년 말 8조3841억원까지 불어났다. 올 1월엔 8조6588억원으로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서울 강남의 한 PB는 “대규모로 관리되는 본사운용형은 개별 투자자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기 어렵지만 지점운용형은 일선 PB가 투자자와 소통하며 포트폴리오를 쉽게 바꿀 수 있다”며 “자기 주도적 성향의 투자자가 늘면서 관심이 커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지점운용형 랩어카운트를 고를 때 PB의 이력과 증권사 규모를 자신의 투자 성향과 맞춰보는 요령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예컨대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대형사는 본사에서 포트폴리오 가이드라인을 주거나 종목별 비중 제한 등 엄격한 투자 기준을 적용하는 경우가 많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투자를 원하는 이들에게 적합하다는 평가다.
덩치가 작은 증권사의 지점운용형 랩어카운트에 가입하면 좀 더 공격적인 포트폴리오를 짤 수 있다. 후발주자로 분류되는 메리츠증권 하나증권 등엔 더 높은 성과보수를 좇아 PB로 전직한 펀드 운용역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랩어카운트에 가입할 때 다국가 포트폴리오를 구축하는 게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오정택 미래에셋증권 투자센터반포 이사는 “미국을 벗어나 중국 기술주, 국내 저평가주 등으로 투자 저변을 넓힐 때”라고 말했다.
이시은 기자
▶ 랩어카운트
증권사, 자산운용사가 고객 자산을 맡아 종합적으로 관리하는 일임형 투자상품. 주식, 상장지수펀드(ETF), 채권 등 다양한 상품을 한 계좌에서 운용한다. ‘감싸다’(wrap)란 단어에서 비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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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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