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증시 주춤하자…서학개미, 달러 RP로 피신
증시 불안이 심화하며 단기 피난처 역할을 하는 환매조건부채권(RP) 투자가 3년 반 만에 최대치를 경신했다. 미 주식시장 상승세가 꺾이자 달러 자산을 잠시 맡겨 두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유로화와 엔화 강세를 점친 RP 상품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 ‘달러 운용처’로 급부상한 RP1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4일 투자자들이 국내 증권사로부터 매수한 RP 잔액은 93조6979억원을 기록했다. 2021년 10월 후 가장 많은 수치다. 2022년 말 60조원 밑으로 내려온 RP 잔액은 지난해 말 83조4102원까지 회복했다. 올해 들어서도 상승세를 이어가며 약 41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RP는 머니마켓펀드(MMF), 종합자산관리계좌(CMA)와 함께 대표적 파킹형 금융상품으로 꼽힌다. 증권사가 보유한 채권을 잠시 투자자에게 팔았다가 이자와 함께 다시 사들이는 구조다. 기초자산은 주로 국채, 회사채 등 안전성이 높은 채권으로 구성된다. 자유로운 입출금이 가능한 수시입출금형, 1주일 미만에서 1년까지 보유 약정을 하면 더 높은 이율을 제공하는 약정형 상품으로 나뉜다. 원화 RP를 기준으로 주요 증권사의 평균 수익률은 연 2.25~2.5%(수시입출금형·개인 기준)다. 연 0.1% 수준인 시중은행 수시입출금 계좌보다 수익률이 높아 꾸준한 수요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RP 잔액을 끌어올린 상품은 달러 RP다. 달러 표시 채권을 기초자산으로 삼아 연 3.5~3.9% 수익률을 올릴 수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하루평균 달러RP 거래 잔액은 201억1640만달러(약 29조2010억원)로 전년 동기(149억2012만달러) 대비 34.83% 증가했다. 지난해 미국 증시로 이탈한 투자자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최근 미국 증시가 약세를 보이자 달러를 단기간에 효율적으로 운용하려는 수요가 커진 것으로 풀이된다.
한 강남권 프라이빗뱅커(PB)는 “고액 자산가는 포트폴리오의 20~30%를 달러화 기반 자산으로 배분했다”며 “최근 미 증시가 부진하자 저가 매수 기회를 노리며 달러 RP 상품으로 자금을 옮기는 자산가가 부쩍 늘었다”고 설명했다. 원·달러 환율이 1400원대에 고착화한 점도 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다.
◇ 엔화·유로화로 보폭 확대엔화, 유로화 등 달러 외의 외화 RP 투자도 늘어나는 추세다. 올 들어 미국 외 국가에 대한 주식 투자 수요가 커지면서 해당 화폐를 보관할 수단으로 RP를 택하는 투자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엔화나 유로화가 당분간 강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증권가 전망도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국내에선 달러 이외 외화 RP를 다루는 곳이 많지 않다. 엔화 RP는미래에셋증권과 대신증권이 취급하고 있다. 이자는 연 0.15%(수시입출금형 기준)로 크지 않지만 법인 고객을 중심으로 투자금액이 늘고 있다. 지난 17일 미래에셋증권의 엔화 RP 잔액은 500억엔(약 4843억원)을 넘어섰다. 유로화와 위안화 RP는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등이 판매 중이다. 이자는 각각 연 2%, 연 1.3% 수준이다. RP 상품 수요가 늘어나면서 올 하반기 한국투자증권도 엔화와 유로화, 호주달러 기반 RP 상품을 확대할 계획이다.
RP 투자가 증가하면서 투자 유의점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RP는 일반적으로 안정성이 높은 상품으로 여겨지지만 원금이 보장되는 건 아니다. 특히 외화 RP는 환율 변동에 따라 손실 폭이 커질 수 있다. 환차익엔 세금이 없지만 이자 수익엔 이자소득세(15.4%)가 부과된다.
이시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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