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하면 면죄부?…증권사 임직원, 5년 간 차명계좌로 3600개 종목 거래
증권사 임직원들이 최근 5년 8개월 동안 타인 명의 계좌로 3600개 넘는 종목을 거래한 것으로 드러났다. 거래 규모는 76억7500만원에 달했지만 형사고발은 단 한 건도 없었다. 일부는 이미 퇴직했다는 이유로 사실상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기도 했다.
13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1월부터 올해 8월까지 차명계좌를 이용한 증권사·자산운용사 임직원은 총 56명, 거래 종목은 모두 3654개였다.
현행 자본시장법은 금융회사 임직원은 본인 명의로만 주식 매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임직원이 가족이나 제3자 이름을 빌리는 방식으로 몰래 거래를 이어왔다.
회사별로 보면 메리츠증권이 차명거래 종목 1711개로 가장 많았다. 삼성증권이 1071개, 하나증권이 444개로 뒤를 이었다. 이어 신한투자증권(201개), 한국투자증권(16개) 순이었다.
거래금액 기준으로는 삼성증권이 21억3000만원으로 가장 컸고, 하나증권 17억8000만원, 메리츠증권 14억6300만원, 한국투자증권 5억100만원, NH아문디자산운용 4억300만원이었다.
실제 사례를 보면 처벌 수준은 경징계에 그쳤다. 2023년 메리츠증권에서는 임직원 16명이 1711개 종목을 차명계좌로 거래했지만, 감봉이나 견책만 받았다. 형사고발은 한 건도 없었다.
2022년 삼성증권에서도 내부자 22명이 1071개 종목을 타인 명의로 거래했지만, 가장 무거운 제재가 정직 3개월과 과태료 2500만원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감봉 3개월이나 과태료 수백만원으로 끝났다.
'이미 회사를 떠났으니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논리로 유명무실하게 마무리된 사례도 있었다. 하나증권은 2022년 퇴직자 6명이 403개 종목(거래금액 16억3000만원)을 차명으로 매매했지만, 회사는 ‘정직 3개월 상당’으로만 처리했다.
대신증권에서도 차명거래가 적발됐지만 퇴직자라는 이유로 ‘면직 상당’ 조치 후 종결됐다. 교보증권은 감봉 3개월과 과태료 800만원, 신한투자증권은 과태료 300만~1400만원에 그쳤다.
자산운용사도 사정은 비슷했다. 한일퍼스트자산운용은 9종목(거래금액 6200만원)을 차명으로 거래했지만 과태료 300만원에 그쳤고, 로버스트자산운용은 66종목(2억1000만원) 거래로 직무정지 3개월과 과태료 2500만원을 받았다. NH아문디자산운용은 19종목(4억300만원)을 거래했지만 정직 3개월과 과태료 1500만원에 그쳤다.
금융실명법은 금융회사 임직원이 반드시 본인 명의로만 주식 매매를 하고, 거래 내역을 분기별로 회사에 보고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불공정거래를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지만, 현실에서는 사실상 종이조항에 머물고 있다.
추 의원은 "임직원 차명거래는 금융투자업의 신뢰를 훼손하는 중대한 사안"이라며 "다수 증권사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경징계로 끝나는 것은 제도의 실효성이 없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퇴직자 여부와 상관없이 형사책임을 명확히 묻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주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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