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5개 정부 위원회 구성 개편한다…"인기영합 정책 우려"
공공기관운영위원회,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전기위원회를 비롯해 정부 산하 위원회 575개(행정기관 소속 위원회 설치운영법에 따른 분류) 위원 구성을 대폭 바꾼다. 국민 대표성을 반영해 위원 구성을 다양화한다는 것이 정부 방침이지만 노조·시민단체의 진입 통로를 넓힐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한다는 명문에 밀려 전문성과 중립성이 훼손되는 것은 물론 자칫 이들 위원회의 정책이 인기영합적으로 흐를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위원회에 노조·시민단체 출신 늘리려는 정부
2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행정안전부 경제조직과는 최근 '행정기관위원회 대표성 강화방안' 연구용역을 발주했다. 노동자·소상공인·소비자·농어민·학부모 등 일반 국민을 대표하는 위원의 개념과 인정기준을 정의하고, 이들의 참여 비율 목표치를 설정하는 것이 핵심이다.
행안부는 위원회의 일반 국민 또는 사회계층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강화하고 정책 결정 과정의 투명성·책임성을 높이기 위한 목적"이라며 "'정부위원회 구성 때 전문성과 함께 지역·세대·직능·사회적약자 등의 대표성을 확대한다'는 국정과제 14번을 반영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경제교육관리위원회, 세제발전심의위원회 등에 노동계 위원을 신규 위촉하거나 추가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나아가 노동계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법제화까지 검토 중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는 올해 4월 그동안 공석이었던 민주노총 추천 위원 자리를 채우기도 했다. 2023년 3월 당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근로자단체 추천 위원인 윤택근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에게 해촉을 통보한 바 있다. 윤 의원이 회의 도중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 구성 변경안에 반대하면서 '고성과 함께 마이크를 집어던졌다'는 이유에서다. 복지부는 이후 최근까지 민주노총 몫의 기금위 위원 자리를 공석으로 남겨뒀다가 지난 4월 민주노총 추천 위원으로 이태환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을 위촉했다. 하지만 기금운용 전문가도 아닌 데다 과거 회의 진행에 훼방을 넣은 노조의 기금위 참여를 놓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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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이 추진하는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공운법) 개정안 등도 비슷한 목적으로 추진 중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여당은 개정안에 따라 기재부 산하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민간위원 수를 확대하고, 기재부 장관 단독위원장 체제에서 민간 위원장 자리를 신설해 2인 위원장 체제로 전환할 계획이다. 현재 위원회는 기재부 장관과 국무조정실 2차장, 교수·기업인·변호사 등 9명으로 구성돼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공공기관 개혁 과정에서 노조를 비롯한 이해관계자가 위원회에 참여할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그만큼 공공기관 개혁을 둘러싼 결정에서 노조를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의 저항이 커질 수 있다. 여기에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을 견제할 장치가 약화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윤석열 정부는 그동안 불필요한 위원회를 정비해왔다. 행안부에 따르면 2022년 636개였던 행정기관 위원회는 2023년 615개, 지난해 590개로 줄었다. 포항지진 피해구제심의위원회, 공제분쟁조정위원회, 직장어린이집 명단공표심의위원회 등이 폐지됐다.
윤석열 정부는 각종 정부 위원회에서 한국노총·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 소속 위원도 배제해왔다. 양대 노총을 모두 합친 한국의 노동조합 조직률이 13%에 불과한 상황에서 양대 노총이 ‘과대 대표’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에 따라 2050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건강보험공단 재정운영위원회에서 양대 노총 소속 근로자 대표위원을 해촉했다.
하지만 위원회 구성원을 대폭 손질을 추진하는 만큼 전 정권의 위원회 구조조정과 전문성 제고 노력이 물거품이 될 것이라는 평가도 많다. 포퓰리즘 정책이 이어질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진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의사결정에는 다양한 전문가들과 이해당사자들의 절차가 필요하지만 최종의사결정은 전문성에 기반해서 내려져야 한다"며 "행정부는 국회와 달리 전문성을 바탕으로 정책을 추진해야 하며 이해집단이 들어오는 순간 포퓰리즘 정책으로 흐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익환/곽용희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