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칼럼] 미국 장기금리의 반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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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태섭 경영학 박사·성균관대 SKK GSB 교수 위험을 감수한 베팅
지난 금요일 파월 의장의 잭슨홀 연설은 하반기 정책금리 인하를 재개하려는 명분 쌓기였다. 빠르게 둔화되는 고용지표로 경기의 하방 리스크가 증가하며 정책의 중심이 경기부양으로 이동하고 있음을 시사하는 동시에 금리인상의 걸림돌이던 급격한 관세인상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재상승 압력은 예상보다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으며 또한 일시적인 물가수준 조정에 그칠 것이라는 비교적 낙관적 입장을 펴고 있다.
연준은 인플레이션에 대해 비교적 낙관적 입장으로 선회였으나 7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와 생산자물가지수 상승률의 세부사항은 시장의 기대와는 달리 인플레이션이 재차 상승하고 있음을 강하게 시사한다.
얼핏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전달 대비 0.2% 상승하는데 그치고 전년 대비 2.4% 상승하면서 연준의 목표치인 2%에 한걸음 더 근접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지난 6개월간의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전년 대비 1.9% 상승한데 불과하기도 하다.
연준의 물가상승률 측정 기준치가 되는 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 상승률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보다 조금 낮은 수준으로 측정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인플레이션이 트럼프 행정부와 많은 투자자들이 기대하는 연준의 9월 금리 인하 결정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것으로 성급한 결론을 내릴 수도 있다.
그러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하락하고 있다는 진단은 착시이다. 소비자물가지수에 대개 상당한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치는 주거 비용의 추세적 하락으로 인한 소비자물가지수 하락분을 제외하면 인플레이션은 2022년 하반기 이후 크게 하락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클리블랜드 연준이 발표하는 중간값 (Median) 인플레이션과 애틀랜타 연준이 집계하는 주거비를 제외한 끈적끈적한 경직요소(Sticky) 인플레이션은 일제히 인플레이션이 재상승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더욱이 7월 발표된 생산자물가지수는 시장 예상보다 급격히 상승하였을 뿐 아니라 각 지역 연준의 제조업 설문조사 자료는 기업들이 원자재 가격 상승분을 하반기 출고가격 인상으로 전가하려는 의도를 비교적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하반기 상품 가격 인플레이션이 급등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아직까지는 소비자 물가가 관세의 영향을 충분히 반영하고 있지 않은 것으로 진단된다. 기업들이 아직까지는 관세 인상에 대비하여 축적한 재고를 소진하고 있기도 하고 4월 트럼프 대통령의 일방적 관세율 인상 발표 이후에 주요 무역 상대국과의 협상이 시작되면서 관세율 자체와 부과 시점이 계속 오락가락하는 경향을 보였기에 아마도 해외 수출업체들과의 잠정적인 양해를 통해 추가 관세를 공급망에서 흡수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실제 관세율이 8배 가량 인상되었음에도 7월 관세 수입이 전년 대비 3.4배 정도밖에 상승하지 않았다는 것은 관세의 영향이 이제 막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관세의 영향은 일차적으로 수입상품 가격 수준의 한단계 상승을 의미한다. 따라서 낙관론자들은 관세의 인플레이션에 대한 영향은 물가수준이 한단계 조정되는 일시적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의 물가지수는 관세의 영향이 상품 가격의 일시적 조정에 그치지 않고 서비스 부문으로 확대되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7월 물가지수를 보면 관세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 가사용품 및 가구 등 일부 상품 가격뿐 아니라 레스토랑 외식비, 치과 의료비, 미용과 헬스 등 개인서비스 비용이 일제히 상승하면서 인플레이션 문제가 관세에 국한되지 않고 서비스 부문으로 확산되고 있음을 강력히 시사한다.
연준은 소비자 기대 인플레이션이 4월 관세 충격으로 일시적으로 급등하였다 다시 하락한 점을 인플레이션이 경제 전반으로 확산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이제부터 체감물가가 현저히 상승하기 시작하면서 기대 인플레이션도 뒤이어 재상승할 것으로 예상한다.
인플레이션이 재점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기대 이상으로 탄탄한 성장세를 보였던 경기가 빠르게 식어가고 있는 듯한 지표가 연이어 발표되고 있다. 7월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더욱 위축되는 모습을 보였고 서비스업 지수는 위축 국면 경계선까지 하락하며 서비스 부문 경기가 심상치 않음을 나타냈다.
기업들의 체감경기가 빠르게 식어가면서 고용도 급격히 위축되는 모습이다. 5월과 6월 신규고용자수가 대폭 하향 조정되었으며 앞으로 하향 조정될 가능성이 높은 7월 신규고용자수도 74,000명에 머물면서 고용시장이 빠르게 위축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이민억제정책에 의해 노동시장 신규 진입 인력이 줄어들면서 구조적으로 팬데믹 이후 평균 20만명 이상에 달했던 신규고용자수가 줄어드는 요인도 있지만 지난 3개월간의 신규고용자수는 실업률을 상승시키지 않는 8만명 ~ 10만명 수준에 휠씬 못 미치는 수준으로 팬데믹 이전의 경기상황에 비추어 볼 때도 고용시장이 빠르게 둔화되고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 파월 의장은 지난 주 연설에서 연준이 결국 고용시장의 둔화를 인플레이션 대비 더욱 심각히 보고 있다는 점을 명백히 하였다.
그런데 고용시장 지표가 빠르게 둔화되고 있음에도 소매판매 증가율은 7월 전월대비 0.5%를 기록하며 6월 0.9%에 이어 다시 견고한 성장세를 보였다. 7월 소매판매 증가율은 가격상승을 감안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연율 2% 정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다.
고용시장과 소비가 정반대의 시그널을 보내며 경기 진단을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하지만 외식비 하락에서 보여지듯이 임의 소비지출이 감소하면서 소비는 결국 고용시장의 둔화를 따라갈 것으로 예측된다. 연준도 결국 이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통화정책은 일시적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결국 고용시장에 중심을 둘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장기금리는 꿈쩍도 하지 않고정책금리 인하에 대한 기대감은 높아지고 있지만 미 국채 장기금리는 쉽게 하락하고 있지 않다. 8월 중순 10년물 발행 옥션 금리는 예정금리보다 1.125 bp 높게 발행되었다. 또한 올 상반기 420억 달러 10년물 국채 발행금리는 4.255%로 예정금리 4.244%보다 높은 수준을 기록하면서 국채 발행시장의 다이내믹이 바뀌고 있음을 시사한다.
과거 미 국채를 지속적으로 매입하던 국채시장의 중요한 수요처인 각국 중앙은행들의 국채시장 매입 비중이 2020년 45% 수준에서 현재는 28% 수준으로 급락하였다. 각국 중앙은행들의 국채 매입 비중이 감소하면서 미 국내 은행들과 프라이머리 딜러(시장조성자)들이 떠안아야 하는 물량이 급증하였다.
은행들의 비중은 20%에서 35%로 딜러들의 비중은 15%에서 25%로 대폭 상승하였다. 그런데 은행들과 딜러들은 국채를 매입 보유하려는 투자자들이기보다는 거래중계기관이기 때문에 투자보다는 판매를 위해 판매되지 않은 물량을 일시적으로 떠안고 있는 것이다.
8월 6일 옥션은 최근의 국채 수요 부진을 명백히 보여준다. 발행물량 대비 응찰률이 2.32배에 그쳐 최근 평균인 2.5배 수준에서 대폭 하락하였고 특히 외국인 응찰 비중이 과거 평균인 70%에서 63.8%로 하락하면서 프라이머리 딜러들이 16.8%의 물량을 떠안았던 것이다.
시장조성자의 역할을 하는 딜러들이 떠안을 수 있는 물량은 물론 여러가지 규제와 시장요소들에 의해 제한된다. Lighthouse Macro의 분석에 의하면 이미 딜러들은 1,200억 달러의 국채를 떠안고 있어 전체 보유 가능 물량의 96% 수준이 채워져 있는 상황이다. 딜러들의 보유 가능 물량이 소진되면서 발행금리는 높아질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에 연준을 포함한 미국 정책당국은 대형은행들의 자본 관련 규제를 완화하여 대형은행들의 국채 보유 한도를 상향 조정하려 하고 있다.
장기물에 대한 수요 부진은 단기물과 비교할 때 더욱 두드러진다. 최근에도 단기채(T-bill)의 응찰률은 3.4배에 달하고 있고 또한 스테이블 코인 물량이 확대됨에 따라 스테이블 코인의 담보인 단기 국채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현재 스테이블 코인이 보유하고 있는 단기물이 이미 1,800억 달러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 의회와 베센트 재무장관은 스테이블 코인 관련 법안을 통과시킴으로써 제도적으로 뒷받침하여 발행물량을 더욱 늘리고 국채 수요기반을 확대하려 하고 있기도 하다.

장기물에 대한 수요 부진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국채 발행 예정 물량은 급증하고 있다. 올 하반기 발행 예정 물량은 1조 5,000억 달러로 매 분기 발행물량이 7,000억 달러에서 8,000달러로 상향 조정되어 있다. 수요부진과 발행물량 증가는 결국 발행물량 소화를 위한 낙찰 금리 상승을 의미한다.
만일 현재의 추세대로 외국인 수요가 지속 감소하고 딜러들의 보유물량 한도가 소진된다면 Lighthouse Macro는 10년물 금리가 4.75%~5.00% 수준까지 상승할 것으로 분석한다. 또한 수요가 극히 부진한 경우에는 발행금리가 5%를 초과할 수도 있을 것으로 분석한다.
이런 장기물에 대한 수요 부진은 베센트 재무장관으로 하여금 취임 전 강력히 비판하였던 옐렌 전장관의 장기채 발행 억제와 단기채 위주 발행 전략에 대한 입장을 번복하고 더욱 적극적으로 발행물량 만기 조정을 하도록 하는 상황이다. 이런 발행물량 만기구조 조정 전략은 결국 미래 장기금리가 하락한다는 가정에 대한 베팅이다. 이것이 트럼프 행정부 주요인사들이 연이어 연준에 대해 금리인하를 유도하는 압력을 행사하고 있는 배경이다.
그런데 연준의 현재 금리정책은 금리 수익률 곡선 전체가 아닌 단기 정책금리만을 통제한다. 과거와 같이 장기채에 대한 수요가 풍부한 상황에서는 단기금리의 인하는 전체 수익률 곡선을 하향 조정하면서 장기금리의 인하를 유도하였다.
그런데 현재는 연준이 일본은행처럼 수익률 곡선 조정에 나서지 않는 한 장기금리의 움직임은 금리 하락에 우호적이지 않은 수요/공급, 기대 인플레이션, 기간 프리미엄 등 다양한 시장 다이내믹에 의해 좌우되고 있다. 또한 연준이 하반기 정책금리 인하로 기울면서 오히려 시장의 기대 인플레이션이 재차 상승한다면 이미 수요 부진에 처해있는 장기금리가 급등하는 시나리오도 배제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은 국채를 떠안은 은행과 딜러들에게 상당한 손실을 초래하며 금융여건을 긴축으로 몰아갈 수도 있다. 그리고 미 국채금리를 기준으로 평가되는 주식 등 위험자산의 가치가 크게 흔들릴 가능성이 높다.
현재 상황에서 한가지 분명한 것은 주식 밸류에이션은 대단히 높은 수준이고 또한 AI 관련 투자와 수익률에 대한 과도한 단기적 기대감은 거품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장기금리는 쉽게 하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시나리오는 결코 주식시장에 우호적이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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