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조 연기금 투자풀 잡아라"…증권·운용가 쟁탈전 개막

68조원 규모 연기금 투자풀 자금을 차지하기 위한 자산운용사와 증권사의 전면전이 4년 만에 막을 올렸다. 주간운용사(주간사) 자격이 기존 자산운용사에서 증권사까지 확대되면서 시장 판도 변화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13일 조달청에 따르면 최근 기획재정부는 '연기금 투자풀 주간운용사 선정을 위한 제안요청서(RFP)'를 공고했다. 이번 RFP는 남재우 자본시장연구원 박사와 여은정 중앙대 교수 등이 연구용역을 통해 만들었다.
연기금 투자풀은 각종 연기금과 공공기관이 맡긴 여유자금을 한데 모아 민간 주간사가 굴리는 제도다. 주간사는 4년마다 재선정되는데, 현재는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이다. 투자풀의 총수탁고는 올 6월 말 기준 68조2618억원으로, 지난 5월 말에는 76조5744억원으로 최고치를 기록했었다.
이번 RFP에는 처음으로 증권사 평가 기준이 신설됐다. 앞서 지난 2월 투자풀의 운영 주체인 기재부가 '연기금 투자풀 제도 개편방안'을 내놓고 증권사의 주간사 진입을 허용하겠다고 밝히면서다.
RFP에서 가장 주목되는 건 '정량평가' 개편이다. 정량평가를 단순 자격심사 성격의 허들로만 작동하게 한 것이다. 투자풀 주간사 선정은 정량평가(1차)와 정성평가(2차)를 거쳐 결정되는데, 과거에는 두 점수를 합산해 최종 순위를 매겼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량평가를 '정성평가 대상 선별' 용도로만 쓰겠다는 전제를 달았다.
정량평가의 활용도뿐 아니라 산출방식도 바꿨다. 과거 표준화 점수법은 최고 실적 보유자를 기준으로 점수를 매겨 기존 사업자가 평균보다 훨씬 높은 점수를 챙겼다. 이에 신규·후발 주자는 트랙레코드가 없어 정성평가 문턱조차 넘기 어려웠다.
이번에는 표준화 점수법을 없애고 구간 평가로 전환했다. 일정 구간으로 나눠 그 안에만 들면 같은 점수를 주는 방식이다. 신규 진입·후발 주자에게 더 유리한 방식이다.
정량평가 비중 25%를 차지하는 '인적자원' 항목이 대표적인 예다. 기존에는 운용인력을 많이 등록할수록 점수가 올라, 실제 투입 계획이 없는 다른 부서 직원까지 명단에 올리는 ‘허수 인력’ 관행이 있었다. 이번에는 구간 평가로 바뀌면서 불필요한 인력 뻥튀기 경쟁이 사라질 전망이다.
주간사가 받게 될 보수율의 경우 4년 전 대비 조금 낮아졌다. 2021년 기재부가 제시한 보수율은 4.89bp(1bp=0.01%)였지만, 이번에는 4.12bp를 제시했다.
아울러 제안서 제출 일정이 크게 늘어진 점도 예년과 다른 점이다. 통상 RFP 사전규격 공고 이후 한 달 내로 제안서 프레젠테이션(정성평가)가 진행됐다. 이번의 경우 이달 1일 사전규격이 공고됐지만 이로부터 두 달 만인 9월29일로 제안서 발표일이 예정돼 있다.
이는 증권사들 편의를 봐준 것으로 풀이된다. 투자풀 주간사에 지원하려고 하는 증권사들은 자격 요건인 '일본 사모집합투자업' 라이선스가 없어 현재 금융당국의 허가를 기다리는 중이다. 제안서를 준비할 시간이 부족한 증권사들 사정을 감안해 기간을 대폭 늘어뜨린 것으로 보인다.
주간사는 증권사와 자산운용사 구분 없이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두 곳이 최종 선정된다. 운용사 중에서는 기존 투자풀 주간사 두 곳인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운용이, 증권사에서는 KB증권과 NH투자증권이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오는 9월 말, 10월 초 협상 적격자가 선정되며 이들은 내년 1월1일부터 4년간 업무를 시작한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투자풀 자체 규모는 70조원 안팎이지만, 공식 수탁고에 잡히지 않는 외평채(외국환평형기금채권) 등을 포함하면 실질 운용 규모는 100조원 규모"라며 "주간사 자리가 단순 수수료 이상의 상징성이 있는 만큼, 각사가 사활을 걸고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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