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지 위 경기국제공항 계획에 전문가·정치권 "심사숙고 해야"

24일 서울시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경기국제공항 추진 안전성 검토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양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한국 공항들에는 (새 떼를 추적할) 레이더가 충분히 잘 돼 있어요. 우리나라의 문제는 새를 못 찾아서가 아닙니다. 이거보단 새를 찾은 뒤 이 새들을 어떻게 비행기로부터 멀리할 수 있을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24일 서울시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열린 ‘경기국제공항 추진 안전성 검토 정책토론회’에서 한국환경연구원 이후승 박사는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한국 항공이 우수한 기술들을 가지고 있음에도 철새 도래지에 무리해서 공항을 짓는다는 것이 역설이라는 설명이다.
공항 반경 13km 새 없어야… '버드스트라이크' 고려 안 됐나
24일 서울시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열린 ‘경기국제공항 추진 안전성 검토 정책토론회’에서 이준석 전 개혁신당 대표가 이후승 박사의 발제를 듣고 있다. 사진=양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이 박사는 토론회에서 “버드스트라이크존은 공항 반경 약 13km에서 발생하고 비행고도 약 2000피트(약 610m) 이하에서 발생한다”며 “문제는 기존에 새들이 살고 있던 곳에 공항을 짓는다고 해서 새들이 떠나는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새들의 가장 큰 특징은 본능적으로 살던 곳으로 돌아오는 것”이라며 “이렇게 환경이 바뀌면서 당장은 새를 내쫓아도 그 새들이 언제 찾아올지 예측하기 어려운 점이 공항으로선 큰 리스크가 된다”고 말했다.
이 박사는 근거로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의 자료를 들었다. 공항 건설 시 철새 서식지, 중간 기착지 및 이동 경로를 최대한 회피·이격하도록 규정하며 새들을 유인할 수 있는 저수지, 경작지, 양식장, 쓰레기 매립장 등의 시설물이 있는 곳을 최대한 지양하고 양립할 수 없도록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ICAO란 UN 산하의 전문기구로 국제 항공 운송에 필요한 원칙과 기술 및 안전에 대해 연구하고 질서 있는 성장을 보장하기 위해 국제 항공 운송의 계획과 개발을 촉진하는 기구다.
또 공항들도 버드스트라이크를 피하기 위해 항공기-조류 충돌 위험성 평가 모델을 세우고 조류 회피 모델(BAM)을 운영해 사전에 이를 최대한 예방하고자 한다고 주장했다.
24일 서울시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열린 ‘경기국제공항 추진 안전성 검토 정책토론회’에서 이준석 전 개혁신당 대표가 나일 무어스 새와생명의터 대표의 발제를 듣고 있다. 사진=양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다만 국내의 경우 사고 위험성에 대한 심각성과 전문성이 결여돼 있고 토지 이용 방지에 대한 규제 주제와 사유재산 규제에 대한 규제 방법이 명시돼 있지 않아 시행의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이 박사는 “공항 바깥 환경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논하는 연계 구조를 만들고 공항 내부뿐만 아니라 바깥쪽 시설들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관리 협력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며 “공항을 짓고 그냥 끝내는 것이 아니라 반경 13㎞ 내 위험물 요소에 대해서도 따져서 타당성과 적극성을 따지는 태도가 필요하다”고 어필했다.
이날 토론 현장에는 실제로 보잉 (NYSE:BA) 777 기종을 30여 년간 몰았었던 전 대한항공 (KS:003490) 이영호 기장도 나와 목소리를 냈다. 이 기장은 “제트엔진 항공기는 조류가 엔진 흡입구로 유입될 시 심각한 추력 손실이 발생한다”며 “특히 하천, 자연보호구역 또는 조류활동이 확인되거나 예상되는 지역에서는 최소한의 엔진동력으로 하강하고 저고도 순항비행을 피하도록 매뉴얼이 돼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 “조류 충돌 방지 대책들은 아직 완전한 충돌 위험 해결책을 제시해주지는 못한다”며 “생태적으로 새떼는 공항과 비행기를 가려서 피해 다니지 않기 때문에 공항 위치 선정 단계에서 새의 서식지를 공항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두는 것이 (조류 충돌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발언했다.
법적으로도 부지 후보 허점 있었다… 정치권조차 곁눈질
24일 서울시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열린 ‘경기국제공항 추진 안전성 검토 정책토론회’에서 이준석 전 개혁신당 대표가 나일 무어스 새와생명의터 대표의 발제를 듣고 있다. 사진=양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경기국제공항 부지 선정에 법적 허점과 오류가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발표자와 토론자들은 조류가 무리지어 사는 곳에 공항을 지을 수 있다는 것 자체에 법의 허점이 강하다고 지적했다.
나일 무어스 새와생명의터 대표는 “현재 유력 후보지로 꼽힌 화성시 인근에는 몸집이 큰 물새들이 무리 지어 살고 있고 이들이 활주로나 항공기 비행 경로를 가로질러 이동할 시 조류 충돌 위험이 매우 높다”며 “중앙정부에도 올라가는 자료이기 때문에 정부가 이 자료를 모를 수가 없고 현 위치는 무안국제공항이나 내륙 공항에서 예상되는 위험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ICAO 지침과 국토교통부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했다.
실제 무어스 대표가 제시한 경기 남부 국제공항 항공 수요 분석 용역 보고서에 따르면 경기국제공항이 들어설 예정인 위치는 국제적으로도 중요한 습지 내에 위치해 있으며 ‘야생동물 보호구역’까지 설정됐을 정도로 생물 다양성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기재돼 있었다.
24일 서울시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열린 ‘경기국제공항 추진 안전성 검토 정책토론회'에서 법무법인 자연 최재홍 변호사, 박상준 이코노믹리뷰 기자, 전 대한항공 이영호 기장 등이 토론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양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토론에 나선 법무법인 자연 최재홍 변호사도 “전략 평가 단계에서 공항 이격거리만 검토할 뿐 조류 충돌 위험을 검토하는 과정은 입지 타당성을 따지는 단계에서 생략돼 있다”며 “도리어 높은 산이 있으면 감점하는 구조로 조류가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법적으로 제외돼 있다”며 허점을 짚었다.
새만금 공항에서 ▲생태자연도 ▲상수원보호구역 ▲습지보호구역 ▲야생동물보호구역 ▲백두대간보호구역 ▲취정수장 ▲해양환경 ▲보호종출현여부 등을 중심으로 평가하고 가덕도 공항 역시 ▲사업비 ▲부등침하 안전성 ▲최대 성토고 ▲토지이용 가용성 ▲해사안전(비행 접근절차-가덕수도와의 고도분리) ▲촌치 수평·원추표면 장애 물량 등만 고려됐을 뿐 조류를 장애물로 여기지 않고 있다는 것이 최 변호사의 논조다.
이코노믹리뷰 박상준 기자는 “과거 새만금공항과 가덕도공항이 정치적인 이유로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후 사업이 진행됐고 그 결과 지금까지도 환경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며 “항공 물류는 전체의 0.2% 수준이고 평택 등에서 요구하는 반도체 화물은 전체의 0.05%라 미미한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제2 허브 공항은 청주국제공항 등을 이용하면 충분히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인천국제공항 역시 향후 5단계까지 확장 가능성이 충분히 열려 있는 만큼 경기국제공항이 꼭 필요한가에 대해선 의문점이라고 덧붙였다.
경기도 수원 인근에 위치한 제10전투비행단에서 공군 동미참 예비군 훈련을 끝낸 예비군들이 퇴소하고 있다. 사진=양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한편 이날 토론회는 정치권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 공군 제10전투비행단을 비롯한 수원 공군기지의 이전이 확정된 상황에서 군 공항의 역할을 경기국제공항이 겸할 수 있다는 문제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군 공항은 전투기 비행소음 등으로 인해 지역권 주민들로부터 ‘님비’로 꼽히는 장소 중 하나다.
공군 제10전투비행단은 낙후 문제와 부대 보안 문제 등으로 이전이 확정됐으나 부지가 확정되지 않았으며 경기국제공항이 군 공항의 역할을 겸할지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다만 현재도 청주공항, 김해공항, 대구공항 등이 공군 비행단과 함께 군 공항의 역할을 겸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제10전투비행단은 과거 이웅평 대위 귀순 작전을 이행한 상징적인 부대인데다가 공군에선 북한과 지리적으로 인접한 특수성 때문에 긴급출동을 비롯한 최전방 전투기지로 여겨져 쉽사리 이전·해체를 논하기 어려운 핵심 부대로 꼽힌다.
24일 서울시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의실에서 ‘경기국제공항 추진 안전성 검토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사진=양정민 이코노믹리뷰 기자
이준석 개혁신당 전 대표는 “김포공항까지 30분 만에 진출하도록 하는 것이 본래 서해선의 목표였고 청주국제공항과 연계성도 화성시가 우수한 만큼 제10전투비행단 이전 계획에 화성시가 이용되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가 든다”며 “안전과 관련된 중차적인 문제가 정치적으로 소비되질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의원은 “조류 충돌은 오래전부터 현실적으로 존재해왔던 현실적인 문제”라며 “지역구에 제10전투비행단 이전이 연결되는 만큼 관련 문제를 잘 풀어낼 수 있도록 충분히 검토하고 따져보겠다”고 말했다.
한편 한현수 경기국제공항 추진단장은 “후보지 발표를 시작으로 앞으로 도민과 함께 만드는 경기국제공항이 추진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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