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조 매물폭탄도 피했다…외국인들 이 종목 쓸어 담았다는데 [종목+]
외국인 투자자가 지난 한 달간 국내 증시에서 4조원 넘는 물량을 쏟아낸 와중에도 정보기술(IT)과 방산주를 적극 담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 불안에 더해 트럼프발(發) '관세 전쟁' 우려로 증시가 좀처럼 방향을 찾지 못하는 상황 속 탄탄한 사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실적 성장이 예상되는 종목을 매입하고 나선 모습이다.
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국인은 지난달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서 4조886억원어치 주식을 순매도했다. 외국인은 지난달 20거래일 중 6거래일을 제외하곤 전부 시장에 물량을 풀었다.
그러나 외국인은 지난달 '셀 코리아'에 나서는 와중에도 네이버(2695억원)는 장바구니에 대거 담았다. 이 기간 네이버는 외국인 순매수 상위 1위를 차지했다. 또 외국인은 네이버와 함께 국내 양대 플랫폼사로 분류되는 카카오(순매수 상위 4위)도 1437억원어치를 사들였다.
최근 중국 스타트업 딥시크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인공지능(AI)'을 내놓자 국내에선 네이버와 카카오가 주목받고 있다. 미국 빅테크(거대 기술기업)가 주도하는 AI 시장의 경쟁 구도가 근본적으로 재편될 가능성이 있다는 기대에서다.
또 외국인은 네이버 다음으로 SK하이닉스(2649억원·2위)를 가장 선호했다. SK하이닉스는 AI 개발에 필요한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을 선점하면서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현재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AI 칩 '블랙웰'에 탑재되는 HBM을 공급하고 있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에 대해 "엔비디아 같은 고객사의 로드맵이 수시로 변하면서 제품 라이프사이클(제품 수명)이 점차 짧아지고 있다"며 "고객사 제품 출시 일정에 맞춰야만 제1공급사의 점유율 우위를 가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신제품 출시 초기 가격 프리미엄도 누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엔비디아 H20 탑재 HBM3 8hi부터, GB300 적용 HBM3e 12hi까지 전 제품 공급이 가능한 건 SK하이닉스밖에 없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한화에어로스페이스(1238억원·5위)와 현대로템(926억원·10위) 등 방산주도 외국인 순매수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방위산업의 장기 호황 사이클이 시작되면서 올해도 방산주가 주도주의 면모를 과시할 것이란 예상이 나온다.
최정환 LS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에너지 자립도가 점차 높아지며 분쟁 중인 중동에 개입할 경제적 요인이 줄어들고 있다"며 "미국 내 여론도 개입보다 불개입 주의를 선호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여기에 더해 트럼프 대통령 당선에 따라 일방주의적 외교 정책이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세계 국가들의 방위비 증가 추세는 지속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외국인은 자동차주인 현대차(-6630억원·순매도 1위)와 기아(-2123억원·9위)를 대거 팔아치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동차에도 보편 관세 25%를 매기겠다고 예고하면서 정책 리스크가 지속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화투자증권에 따르면 미국의 25% 관세에 대한 현대차·기아의 합산 부담액은 연 9조3000억원 수준으로 추정된다. 이를 올해 영업이익 예상치(매출액 292조3000억원·영업이익 25조6000억원)에 적용했을 때 최대 36% 감익되는 영향을 받는다.
김성래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트럼프 1기 때보다 강력한 정책 드라이브가 걸릴 가능성이 있다"며 "국내 완성차 업종의 관세 부과 회피 여부에 대해 냉정한 시각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KB금융(-4797억원·2위)과 신한지주(-2148억원·8위) 등 금융주도 정리하는 모습이다. 금융주는 지난해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정책 기대로 상승 가도를 달렸지만 같은 해 말부터 현재까지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정책 연속성이 흔들릴 것이란 시장의 우려가 주가에 반영되고 있다.
다만 배당 시즌 등을 감안할 때 금융주의 상승 모멘텀(동력)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인 BNK투자증권 연구원은 "올해 일부 은행의 주주환원 기대 축소와 실적 감소 등으로 금융주의 수익률이 코스피보다 부진했다"며 "하지만 주주환원율 상향과 배당 시즌이 도래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상승 모멘텀은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고정삼 한경닷컴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