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칼럼] 코스피 5000,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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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관 라이프자산운용 부사장
개인투자자의 등장, 주식시장 생태계 변화의 신호탄
"요즘 주식시장이 좋다고 하던데, 너는 좀 어떠니?"
며칠 전 시골에 계시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다. 여의도에 몸담은 지 이십 년이 되는 동안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물음이었다. 필자의 어머니에게 주식은 늘 도박처럼 위험하기만 한 존재였으니 의외가 아닐 수 없었다.
과거 업계에서는 편견 섞인 농담도 있었다. ‘증권사 객장에 아이를 포대기로 업은 전업주부들이나 군복입은 군인들이 등장하면 그때가 꼭지다’. 평소 주식과 거리가 멀던 일반인들이 뛰어들기 시작하면 그게 곧 버블의 신호라는 해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여전히 ‘무지성 투자’를 하는 일부 개인들이 있겠지만, 전반적으로 평가해보자면 과거의 개인들과 현저히 다르다. 이는 단순한 투자자 개인의 변화를 넘어, 주식시장 생태계 전반의 구조적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로 읽힌다. 현재의 개인투자자들은 정보 접근성 향상, 투자 도구의 다양화, 제도적 지원 확대라는 환경 변화 속에서 보다 합리적인 투자행태를 보이는 경우가 늘고 있다.
우선 스마트폰의 보급과 모바일 주식 거래 앱 확산으로 개인투자자들의 시장 접근성이 획기적으로 높아졌다. 또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 ·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뿐만 아니라, 네이버, 유튜브 등에서 투자자들의 눈높이에 맞춘 실시간 정보와 데이터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개인들의 주식시장 이해도가 올라가고, 정보의 비대칭성은 점차 줄어들고 있다. 더 나아가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개인형 퇴직연금(IRP) 계좌와 같은 세제 혜택, 퇴직연금 확정기여형(DC) 확대 등 제도적 지원을 통해 개인투자자들은 주식시장과 한층 더 친밀해지고 있다. 특히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는 “자산 증식이 곧 개인의 역량”이라는 인식을 바탕으로 그 어느 세대보다 주식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들의 활발한 참여는 단순히 시장의 유동성을 높이는 것을 넘어, 시장의 역학관계 자체를 바꾸고 있다. 과거 ‘기관 주도 – 개인 추종’이라는 생태계가 ‘기관-개인 경쟁 및 견제’라는 새로운 구조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개인들의 집단적 힘이 특정 주식의 가격을 움직이기도 하고, 심지어 개인 투자자들이 공매도 세력에 맞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2023년 국내 이차전지 열풍을 이끈 선두주자는 증권사의 애널리스트가 아닌 유명한 경제 유튜버였다. 올해도 일부 대형주들이 소수의 개인 유튜버 방송을 계기로 단 하루만에 큰 폭의 상승을 기록하기도 했다. 미국에서는 2021년 레딧 같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개인 투자자들이 똘똘 뭉쳐 게임스톱에 공매도 포지션을 취한 헤지펀드에 맞서 대량 매수를 함으로써 주가를 폭등시키고, 이로 인해 헤지펀드들이 막대한 손실을 입기도 했다. 개인투자자들의 시장 지위가 바뀌었음을 전세계에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국내에서도 앞서 소개한 이차전지 열풍 때, 여러 헤지펀드들이 공매도 포지션을 취했는데, 유튜버들을 선두로 많은 개인 투자자들이 대량 매수에 힘을 실었고, 이를 감당하지 못했던 한 해외 헤지펀드의 매니저가 결국 포지션을 손절한 후 해고를 당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심지어 당시 이차전지에 대해 과열신호를 보낸 한 증권사의 애널리스트는 이에 불만을 품은 개인투자자들로부터 출퇴근길에 협박을 받았다는 말도 있다.
개인투자자 증가의 긍정적 측면과 함께 주의할 점도 있는 것이다. 정보 비대칭 완화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존재하는 투자 경험 격차, 소셜미디어를 통한 정보 확산의 양면성, 그리고 집단 심리에 따른 변동성 확대 가능성 등이다. 무분별한 정보의 홍수는 상대적 열위에 있는 투자자들을 호도할 수 있고, 그에 따른 집단적 매수세가 단기적인 과열을 부추기고, 기업의 본질가치와 무관한 가격변동을 초래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과열은 지속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수없이 봐왔다.
우리나라는 이미 2020년에 개인들이 보유한 주식 계좌가 5000만 개를 돌파했다. 비단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글로벌 주요 국가들이 공통적으로 보이는 현상으로, 이는 전 세계적인 투자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시사한다. 블랙록의 조사에 따르면, 세계에서 가장 저축을 많이 하는 독일조차 2022년 이래 3백만명 이상의 개인들이 주식 투자를 시작했다. 10년 전보다 주식을 보유한 개인의 숫자는 44%나 증가했고, 그로 인해 2017년 이후 독일에 상장된 상장지수펀드(ETF)의 자산규모는 2배로 확대되었다.
이런 흐름은 개인들의 단순한 투기적 열풍에 그치지 않고, ‘저축에서 주식투자로’, ‘부동산에서 주식투자로’ 옮겨가는 자산 배분의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개인투자자의 증가는 단기적인 가격 변동을 넘어, 전 세계 금융시장 구조와 기업 지배구조, 그리고 자본시장 문화 전반을 재편하는 새로운 시장 생태계의 신호탄으로 읽어야 한다. 다만 이러한 변화가 시장 전체의 효율성 증대로 이어지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할 것이며, 투자자 교육 확대와 시장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다양한 장치들의 병행적 발전이 요구된다.
기관 투자자들의 심리적 저항: 역사적 고점에서의 신중론코스피 지수는 지난 금요일(19일) 기준으로 연초 대비 43.58%가 상승했다. 세계 주요 주가지수 중 가장 큰 폭의 상승세였다. 이런 훈풍을 타고 국내 주식형 펀드에는 유례없는 대규모 자금들이 기관과 리테일로부터 유입되었다.
현장에서 실감하는 바로는 가히 1990년대 말 ‘바이코리아 펀드’ 때나 2000년대 중반 ‘미래에셋 인사이트 펀드’ 열풍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신규 주식형 헤지펀드들이 판매사에 걸리기만 하면 완판이 된다는 뉴스가 심심치 않게 보도된다. 헤지펀드를 운용하는 상위 운용사 중에는 순자산총액이 올들어 1조 원 이상 증가한 곳들도 여럿이다. 신규 자금 유입과 기존 자금의 운용수익으로 인해 자산이 늘어난 덕분이다.

<출처: 블룸버그>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근래 여러 펀드 매니저들을 만나보면 향후 주가 방향에 대한 그들의 심리적 장벽을 느꼈다. 코스피가 단군 이래 가장 높은 수준에 도달한 지금, 그 이후를 상상하는 일이 매니저들에게는 오히려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낯섦과 막연한 두려움이라고 본다.
이런 심리적 장벽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하는데, 미국발 관세 전쟁을 비롯해 대내외 경제적 여건의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커진 지금 상황에서 과연 코스피가 4000을 넘어 5000의 시대를 열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이 실제로는 자본시장의 기관 참여자들에게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그들이 지나치게 오랜 기간 ‘코리아 디스카운트’에 익숙해진 나머지, 정작 전문가들조차 한국 증시의 저평가 현실을 제대로 인정하지 못한다는 방증일수도 있다.
숫자가 말해주는 코스피의 여력최근에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와 관련해 대만이 자주 언급된다. 중국과 북한이라는 지정학적 리스크, 그리고 양국 증시의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와 TSMC가 모두 반도체 기업이라는 공통점이 한 몫 하는 것 같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만의 시가총액은 한국 코스피보다 38% 정도 크고, 대장주인 TSMC의 시가총액은 한국의 삼성전자보다 3.2배나 크다. 하지만 수치를 하나씩 뜯어보면, 과연 한국 주식시장이 대만에 비해 이렇게까지 저평가 되어야 하는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구 분 | 시가총액 |
코스피 | 2,756조원 |
대만 가권지수 | 3,798조원 |
<출처: 블룸버그>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대표 선수들인 삼성전자와 TSMC를 비교하면, 규모와 수익성의 간극이 뚜렷하긴 하다. 앞서 말했듯이 TSMC의 시가총액은 1516조 원으로 삼성전자의 471조 원 대비 3.2배에 달한다. 블룸버그가 추정한 2025년 예상 매출은 삼성전자가 318조 원으로 TSMC의 169조 원을 훨씬 웃돌지만, 밸류에이션 지표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삼성전자의 예상 주가수익비율(PER)은 17.48배로 TSMC의 21.29배 보다 낮다. 즉, 이익 대비 주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뜻이다. 주가순자산비율(PBR) 역시 삼성전자는 1.31배에 불과한 반면 TSMC는 6.25배에 이른다.
물론 PER와 PBR은 기업의 밸류에이션 일부를 보여줄 뿐이다. 주가에 영향을 주는 가장 큰 요소를 수익성이라고 꼽는다면, 해당 지표에서 TSMC가 자기자본이익률(ROE) 30.29%, 영업이익률 45.68%로 압도적이다. 삼성전자가 TSMC 대비 시장에서 낮은 밸류에이션을 받는 것은 시장 디스카운트와 실제 수익성 격차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고수익 · 고마진 사업구조 구축’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구 분 | 삼성전자 | TSMC |
시가총액 | 471조원 | 1,516조원 |
2025년 예상매출 | 318조원 | 169조원 |
PER | 17.48배 | 21.29배 |
PBR | 1.31배 | 6.25배 |
ROE | 7.94% | 30.29% |
영업이익률 | 10.88% | 45.68% |
* P/E · PBR은 2025년 포워드 기준, ROE · 영업이익률은 2024년 기준
<출처: 블룸버그>
물론 TSMC의 압도적 수익성과 성장성을 고려하면 높은 밸류에이션에는 합리적 근거가 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한국과 대만의 전반적인 경제 규모나 발전 수준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양국 증시의 시가총액 격차가 이 정도까지 벌어질 이유는 충분하지 않아 보인다.
2024년 한국의 명목 GDP는 1조 8,700억 달러로 전세계 12위, 대만은 7700억 달러로 22위에 그쳤다. 명목 1인당 GDP 역시 한국 3만6132달러, 대만 3만3234달러로 한국이 앞선다. 구매력평가(PPP) 기준으로는 2023년 대만이 7만2485달러, 한국이 5만6709달러로 대만이 높지만, 이는 대만의 상대적으로 낮은 물가 수준이 반영된 것으로, 실질 생활수준 측면에서 대만이 우위를 보인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만 자본시장에서 더 중요하게 평가받는 명목 GDP 규모나 임금 수준에서는 한국이 앞선다.
지난 3월에 중국시보 등 대만언론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올해 대만의 대졸자 초임연봉은 약 1780만원 수준에 머문다. 반면 한국경영자총협회의 올 초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대졸자 초임은 2023년 기준 3675만원으로 대만의 두배 수준이다. 물가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명목 소득 격차는 상당하며, 가계의 소비 여력 측면에서 한국이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무엇보다 대만 경제와 자본시장은 TSMC 의존도가 상당히 높다. TSMC는 GDP의 약 15%를 차지한다. 또 1034개 종목으로 구성된 대만 가권지수(TWSE)에서는 TSMC의 단일 종목비중이 무려 39.9%에 달한다. 대만의 높은 1인당 GDP(PPP)와 주가지수 상승은 상당부분 ‘TSMC 프리미엄’이 반영된 결과인 셈이다.
물론 한국도 삼성전자의 코스피 비중이 17%에 달하지만, 코스피는 이 외에도 반도체, 이차전지, 바이오, 금융, 자동차, 조선, 소비재 등 내수 및 글로벌 시장에서 활약하는 다양한 산업 포트폴리오로 구성되어 있어 단일 기업 의존도가 상대적으로 낮고 리스크 분산 효과도 크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려면: 구조적 혁신이 답이다블룸버그가 추정한 코스피의 예상 포워드 PER은 약 12배에 불과하다. 이는 MSCI 이머징마켓지수의 15배와 비교해도 낮으며, 단순히 이 수준만 인정받아도 코스피는 4300포인트까지 갈 수 있다. 나아가 대만이 적용 받는 19배의 밸류에이션을 대입하면, 5400포인트도 가능하다. 다시 말해, 한국 증시가 단지 글로벌 평균 수준의 평가만 회복해도 현재 대비 최소 25% 이상의 상승 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위에서 언급한 숫자는 목표수익률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단순한 예시일 뿐이다.
또한 PER이라는 지표 하나로 적정 주가를 판단하는 것은 분명한 한계가 있다. 국가별 리스크 프리미엄, 유동성, 경제 성장률 등 다양한 요인이 밸류에이션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한계를 감안하더라도 한국 증시의 구조적 저평가 가능성은 여전히 유의미하다.
그러나 이러한 계산은 그저 희망회로에 그쳐서는 안 된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핵심 원인 – 낮은 기업지배구조 투명성, 경직된 제도, 비친화적인 투자자 정책 – 이 실질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사실이 국내외 투자자들에게 충분히 증명되고 납득되어야 한다. 구조적 개혁은 하루 아침에 뚝딱하고 이뤄지지 않으며, 우리가 지향하는 바람직한 기업 지배구조와 지속가능한 성장모델의 정착은 수년에 걸친 점진적 과정이 될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의 주가는 비록 단순한 수급이나 일시적 자금 유입에 의해 변동성을 띌 수는 있겠지만, 좀 더 길게 보면 구조적 개혁의 진행 속도와 그 과정에서 제시되는 마일스톤 등에 따라 합리적인 궤도를 찾을 것이다. 근본적 개선이 없이 코스피 5000에 금방이라도 도달할 것처럼 기대하는 것은 성급하고 위험하다.
지금 필요한 것은 버블을 경계하되, 구조적 저평가를 직시하고 이를 구조적인 혁신으로 연결하려는 집단적인 의지다. 구체적으로는 기업지배구조 개선, 주주친화정책 확대, 규제 혁신 등이 단계적으로 이뤄져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 기업, 투자자 모두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 의지를 실천할 때 비로소 한국 증시는 신뢰 기반의 리레이팅(re-rating)을 경험할 것이다. 그때 우리는 글로벌 시장과 진짜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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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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