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바로 전환 어렵다더니"…SPC, 李 대통령 질책 한달 만에 야근 줄인다

연간 330억원 규모의 대규모 투자를 동반한 이번 결정은 정치적 압박이 기업 경영에 미치는 지속적 영향력을 보여주지만, 과거 약속 불이행 전력으로 인해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도 커지고 있다.
◇ 10월 예정→9월로...정치적 압박 효과
SPC는 애초 10월 1일 전면 시행 예정이던 신 근무제를 9월 1일부터 시범 운영하겠다고 27일 밝혔다.
회사 측은 "계열사별 교섭대표 노동조합과 협의를 거쳐 노사 간 잠정 합의가 이뤄졌다"며 "9월 한 달간 시범 운영으로 시스템을 점검한 후 10월부터 전사에 안착시키겠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 25일 이재명 대통령이 SPC삼립 시화공장을 직접 방문해 "똑같은 현장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똑같은 사고가 반복된다"며 34차례에 걸쳐 질책한 지 정확히 한 달이 지난 시점이다.
당시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바로 전환하기는 어렵지만 순차적으로 서서히 바꿔보겠다"고 모호하게 답했지만, 이틀 뒤인 7월 27일 전격적으로 10월부터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번 개편의 핵심은 전 계열사 생산 현장에서 야간 8시간 초과 근무를 완전히 없애는 것이다. SPC삼립과 샤니에는 3조3교대 체제를, SPL과 비알코리아에는 기존 주야간조 사이에 ’중간조’를 신설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이를 위해 그룹 전체에서 약 250명을 추가 고용하기로 했다. 전체 직원 2만2000여명 중 생산직 6500명에서 4% 증가하는 규모다.
근무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감소 문제도 보완책을 마련했다. 기본급 인상과 함께 휴일수당 가산율을 기존 50%에서 75%로, 야간수당을 50%에서 79%로 상향 조정했다.
다만, 이러한 수당 인상이 한시적 조치인지 항구적 조치인지는 명확하지 않아 노동계의 우려를 사고 있다.
이번 근무제 개편으로 SPC그룹에 연간 330억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예정이다.
이는 2024년 SPC그룹 전체 영업이익 768억원의 43%에 해당하는 막대한 규모다. 단순 비교하면 2022년 허영인 회장이 약속한 3년간 1000억원 안전 투자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연간 기준으로는 더 큰 부담이다.
문제는 과거 약속의 실효성이다. 2022년 10월 SPL 평택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사망한 후 허 회장이 직접 나서 발표한 1000억원 안전 투자는 2025년 4월 기준 약 917억원(92%)이 집행됐다.
그러나 2023년 8월 샤니 성남공장, 2025년 5월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똑같은 유형의 끼임 사고가 연달아 발생했다.
특히 최근 시화공장 사고는 30년 된 노후 설비에서 윤활유 자동분사 장치가 고장 난 상태에서 작업자가 위험구역에 직접 진입해 발생했다. 11cm 간격의 좁은 공간에서 기계를 멈추지 않고 작업하게 한 것은 명백한 안전 수칙 위반이었다.
이는 막대한 안전 투자에도 불구하고 현장의 기본적인 안전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에 SPC 측은 단순한 설비 투자를 넘어 근무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구조적 개혁’에 나섰다. 주당 근무시간을 52시간에서 48시간으로 단축하고, 야간 근무 자체를 대폭 줄이겠다는 계획이다.
다만, ’연결조’라는 이름으로 밤 11시부터 아침 8시까지 근무하는 형태는 남아있다.
야간 노동의 총량은 줄어들지만 본질적인 위험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또한 250명의 추가 고용이 2교대에서 3교대로 전환하기에 충분한 규모인지도 의문시된다.
SPC에서 반복되는 산업재해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최고 경영진의 책임 부재다. 2022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이후에도 허영인 회장은 단 한 번도 산재 사고와 관련해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다. 대신 계열사 대표들만이 처벌 대상이 되는 구조가 반복됐다.
2022년 SPL 평택공장 사고에서는 강동석 전 SPL 대표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검찰은 허 회장에 대해 "SPC그룹 회장으로서 계열사인 SPL의 주요 의사결정에 영향력이 있다는 점만으로는 중대재해처벌법상 경영책임자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러한 판단의 배경에는 SPC의 복잡한 지배구조가 있다. 그룹의 실질적 지배회사는 비상장사인 파리크라상으로, 허영인 회장과 그의 가족이 지분 100%를 소유한 완벽한 가족회사다. 파리크라상은 상장사 SPC삼립의 지분 40.7%를 보유한 최대주주이면서 샤니, 비알코리아 등 핵심 계열사들을 직접 지배한다.
문제는 각 계열사가 형식적으로는 독립된 법인체계를 갖추고 있어, 사고가 발생하면 해당 계열사 차원의 책임으로만 국한된다는 점이다. 그룹 차원의 안전 정책을 수립하고 투자를 결정하는 것은 허 회장이지만, 법적 책임은 개별 계열사 대표에게만 물어지는 기형적 구조다.
현재 허 회장은 노조 탈퇴 강요 혐의로는 재판을 받고 있지만, 정작 노동자 생명과 직결된 산업안전 문제에 대해서는 법적 책임에서 자유롭다.
이번 330억원 투자 발표 역시 이러한 구조적 모순을 그대로 둔 채 이뤄진 것이어서 근본적 변화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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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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