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신전환 사기' 모수서울과 손님들 "반코스에 반값만"..결국 피해자들끼리 구제 [신종 금융사기 '넘버피싱'·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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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8.01 14:47

빠르게 진화하는 기술만큼 범죄도 진화하고 있다.

피싱범죄 역시 유형을 달리하며 변주하면서 피해를 키우고 있다. 착신전환 방식으로 기업이나 사업장의 전화번호를 가로챈 뒤 피해자의 돈을 중간에서 챙기는 '넘버피싱' 범죄 역시 새로운 형태의 피싱 범죄다.

문제는 관련 범죄가 끊임없이 발생하는데도 수사는 지지부진하고 피해자의 피해 복구는 전무하다는 점이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넘버피싱 범죄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나섰다.

이 의원은 “넘버피싱과 같은 신종 범죄는 큰 민생 피해로 이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경찰청 범죄 통계에 별도로 관리되지 않는 등 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구조상 피해자 구제나 가해자 처벌 역시 복잡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인공지능(AI) 기술과 결합해 피싱 범죄가 더욱 고도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국회 차원에서 입법 공백을 시급히 메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피해 예방을 최소화하기 위한 고민도 시작됐다.

'착신전환 사기' 모수서울과 손님들 "반코스에 반값만"..결국 피해자들끼리 구제 [신종 금융사기 '넘버피싱'·⑤]

손놓고 있던 착신전환, 들여다 보기 시작

넘버피싱 피해자들은 취재 과정에서 '코로나19 이후'라는 말을 자주 했다. 코로나가 확산되던 당시 보건당국이 집합금지 명령을 내리면서 대부분의 사업장은 재택근무로 전환했고 걸려오는 전화를 놓치지 않기 위해 착신전환을 신청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었다. 착신전환 신청이 급격히 늘어나면서 넘버피싱이라는 범죄가 파생됐을 거라는 예상도 했다.

그러나 추측만 있을 뿐 확인할 길은 없었다.

이정헌 의원실은 착신전환으로 번호를 도용한 피싱범죄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SK텔레콤(SKT)·KT·LG 유플러스(U+) 등 이동통신사 3사에 착신전환 서비스 가입 고객 등의 데이터를 요청했다. 하지만 개인정보 등의 이유로 관련 통계를 보유하고 있지 않거나 있어도 제공할 수 없다는 내용으로 회신했다.

다만 지난 3월 착신전환을 이용해 모수 서울의 예약금을 가로챈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해당 사건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돼 있는 이통사들은 빠르게 대책을 내놨다.

모수 서울이 가입한 SK브로드밴드 측은 사건이 발생한 뒤 착신전환 사기 범죄 주의 안내 등 후속조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KT도 모수 서울 관련 본보 보도가 나간 뒤 고객들에게 착신전환 서비스에 가입할 때 착신전환 설정을 KT 직원이 유도하지 않는다고 안내하고 있다. 또 착신전환 사기전화의 특징과 예방방법, 신고 및 문의 방법 등도 고지하고 있다.

모수 서울의 착신전환을 요청한 피싱 범죄자는 자신을 KT 직원으로 사칭했다.

SKT와 LGU+는 기존에 있던 가이드라인을 유지하는 데 그쳤다.

이통사들을 관리하는 주무 부처인 과학기술정통부는 이정헌 의원실에 착신전환 사기 사건과 관련해 이통사들의 대응 등을 살펴보겠다고 전했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전기통신사업자가 착신전환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전기통신사업법 제32조의8 제2항에 따라 착신전환서비스의 내용 및 가입·설정 절차 등을 해당 부처에 신고해야 한다. 신고한 내용과 다르게 운영해선 안 되고(제3항) 이용자의 신청없이 임의로 착신전환 서비스를 설정해서도 안 된다(제4항).

이통3사가 넘버피싱 피해를 최소화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전문가의 주문도 있었다.

안성진 성균관대 컴퓨터교육과 교수는 "이통 3사와 경찰청이 착신전환 서비스와 관련해 데이터를 집계하는 것은 '상당히 유효한 방법'"이라며 "통신 사업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런 게(착신전환 사기 범죄) 문제가 된다고 하면 작은 피해라고 막을 수 있는 만큼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피해 당사자들 '한 발씩' 양보

취재 과정에서 반가운 소식도 들려왔다.

안성재 셰프가 운영하는 모수 서울은 식당을 예약하려다 넘버피싱 범죄에 노출된 것으로 확인된 피해자들에게 약식 형태로 식사를 제공하기로 했다. 피해자들은 1인당 42만원인 모수 서울에 식사 예약을 하며 선입금을 요청한 범죄자에게 적게는 84만원부터 많게는 500여만원을 송금했다.

경찰 신고로 피싱범죄 수사를 요청한 이들은 동시에 모수 서울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했다.

피해자인 강모씨는 "한 동안 모수 서울은 '실수는 맞지만, 법적 책임은 없다'는 일관된 주장을 해 왔다"면서 "사과를 하지 않던 모수 측에서 어느날 연락이 오더니 합의를 하자고 제안했다"고 설명했다.

모수 서울 관계자는 "우리 식당을 이용하시려다 피해를 입으신 데 도의적인 차원에서 간단하게라도 대접을 해 드리는 게 맞겠다고 판단해 말씀 드렸다"며 "합의의 개념이라기 보다는 도의적인 마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피해자 분들이 원하는 대로 다 해드리고 싶지만, 저희도 영업하는 입장이다 보니 다 해 드릴 수는 없고 저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생각해 제안했다"고 말했다.

모수 서울 측에서 제안한 내용의 핵심은 각자가 한 발씩 양보하는 것이다.

모수 서울 관계자는 "두 가지를 제안했다"면서 "이미 8월까지는 예약이 다 찼으니 9, 10월에 와서 식사를 하면 좋을 거 같아 말씀 드렸다. 다만 현재 제공하는 것에서 절반 수준으로 하고 대신 음식값은 절반만 부담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피해자들은 완벽한 결말은 아니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강씨는 "뭔가 찜찜한 결론이기는 해도 고소를 진행할 경우 거기서 오는 마음 고생, 몸 고생을 생각하면 그냥 받아들이는 게 낫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며 "함께 소송에 나선 분들도 생각을 같이 했다"고 전했다.

모수 서울도, 피해자들도 각자 손해를 보는 쪽으로 원만하게 마무리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양 쪽 모두 아쉬움과 함께 한 목소리를 낸 건 범죄 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씨는 "금융 사기 피해자가 됐다는 걸 아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늘 아쉬웠던 게 법적으로 보호해 주고 배상해 줄 장치가 없었다는 점"이라며 "사기 피해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적 차원에서 법적으로 명확한 뭔가가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모수 서울 관계자도 "재발 방지를 위해서 국가가 나서 준다면야 너무 좋은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피싱에 속지 않는 것 뿐"이라며 "명함까지 보내주면서 착신전환하라고 하니 당할 수 밖에 없었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어 "수사 결과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뭔가를 바라는 건 없고 빨리 그 피의자가 검거되길 바라는 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제도가 필요한 이유는 피해 복구도, 보상도 이뤄지지 않은 피해자의 고백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정보기술(IT) 업체 전화번호를 가로챈 범죄자 말에 속아 1억원의 투자금을 송금한 A씨는 "'너 죽고 나 죽자', 이런 말이 왜 있는지 알겠더라. 피가 거꾸로 솟아오르는 분노를 느꼈다"며 "피해자가 극단적인 일을 벌여 사회적 관심이 생기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나서지 않을 것 같았다"며 절망적이던 때를 떠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