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4조원대 가상자산 사기 의혹’ KOK 핵심 인물 국내 송환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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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兆) 단위 피해 규모’의 가상자산 KOK(콕) 토큰 사기 혐의와 관련한 핵심 인물이 조만간 국내 송환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부가 사건 초기 기획자로 알려진 한아무개씨의 송환 절차를 물밑에서 진행 중인 것으로 파악되면서, 3년째 수사 중인 이번 사건의 실마리가 풀릴지 주목된다. 한씨는 최근 미국에서 체포돼 이민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검경의 수사 대상에 오른 주요 피고발인이기도 하다.
KOK 사건은 국내 피해 규모만 4조원대로 추정됐다. KOK 재단이 투자자들에게 ‘원금 보장’을 약속하며 토큰 구매·예치를 유도하면서 불거졌다. 이는 “주변인 투자에 따라 보상률을 차등 적용한다”는 전형적인 다단계 사건이다. 이와 관련해 한씨는 2018년 중국에서 만든 코인이 실패한 직후 KOK 수익 모델을 기획한 핵심 인물이다. 미국·일본 등 해외 피해 사례도 제기된 상황이다.
미국에서 추방 재판…양국 간 물밑 논의 파악
시사저널 취재 결과, 미국 라스베이거스 이민법원의 글렌 R 베이커 판사는 7월9일(현지시간) KOK 토큰 사건의 초기 기획자로 알려진 한씨의 청문 절차를 진행한다. 한씨의 추방 여부를 판단할 청문 절차는 지난 4~5월 두 차례 기일이 잡혔었다. 미 현행법은 이민법 위반자, 일반 형사범죄, 제노사이드(집단학살) 등 체류자의 추방 사유를 폭넓게 규정한다. 연방 법무부 이민심사국(EOIR) 산하 기관인 이민법원의 판사가 추방 여부를 심리한다.
구체적 절차는 △미 국토안보부(DHS) 요원 등의 체류자 체포 △48시간 내 체포된 체류자의 보석 결정 △출두 명령을 뜻하는 ‘NTA(Notice to Appear)’ 발급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추방 절차상 이의가 있는 경우에는 구체적인 심리가 이뤄진다. 한씨는 변호사를 선임해 대응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의 추방 결정에 반대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한씨는 향후 이민법원의 판결에 불복하는 경우 이민항소위원회(BIA)에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다. 이 때문에 실제 한씨의 입국까지는 시일이 걸릴 수 있다.
양국은 이러한 상황에서 한씨의 송환과 관련해 물밑에서 논의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올해 초 한씨가 체포된 이후 진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범죄인 인도조약과 관련법 등에 따르면, 정부는 국내법 위반 혐의를 받는 인물이 있는 해외 국가를 상대로 범죄인 인도 절차를 밟을 수 있다. 법무부 장관뿐 아니라 검사,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등도 요청 가능하다. 외교부 장관은 법무부 장관에게서 인도청구서 등을 받으면 이를 해당국에 보내야 한다(범죄인 인도법 제44조 등).
과거에도 법무부가 해외 도주범을 국내로 송환한 전례가 있다. ‘테라·루나 사건’의 피의자로 권도형씨의 측근인 한창준(2024년 2월), ‘세월호 사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차남 유혁기(2023년 8월) 등이 대표적이다. 세네갈로 도주한 사기범(2024년 5월)과 같은 일반 형사사건 피의자 역시 송환됐다. 이 밖에 인터폴 수배를 통한 강제송환, 여권 행정제재 등을 통한 송환도 가능하다.
이와 관련해 법무부는 “정부는 법률과 협약 등에 따라 해외로 도주한 범죄인들의 국내 송환을 위해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씨의 송환 논의에 대해선 “현재 진행 중인 수사와 관련된 내용으로 외교 관계에 관한 정보에 해당한다”며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KOK 재단이 2019년 9월 서울 용산구의 한 호텔에서 진행한 행사 모습 ⓒ유튜브 캡처
KOK 수익 모델, 다단계 방식과 유사
이에 따라 국내 수사에도 속도가 붙을지 주목된다. KOK 사건과 관련한 수사는 올해로 3년째 진행 중이다. 일부 피해자가 2022년 울산경찰청에 수사를 의뢰하면서 사건이 드러났다. 이를 계기로 여러 건의 고소·고발장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일선 검찰청 등 전국 수사기관에 접수됐다. 이후 울산경찰청이 수사를 전담했다. 경찰은 현재 검찰의 두 차례 보완수사 지시에 따라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전국에서 수사 의뢰가 빗발친 이유는 무엇일까. KOK 재단은 2019년 8월 남아프리카 세이셸공화국에서 설립됐다. 재단의 주력사업은 ‘KOK PLAY’라는 콘텐츠 플랫폼이다. 영화와 게임 등 K콘텐츠가 해당 플랫폼에서 제공된다는 것이 KOK 재단 측 설명이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넷플릭스처럼 수익을 내겠다는 취지다. KOK 재단이 발행한 KOK 토큰을 이용해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다고 했다. KOK 토큰을 구매하고 이를 비트코인 등으로 바꿔 예치하면, 구매 금액의 7~12%에 달하는 수당을 토큰으로 지급한다고도 했다.
KOK 재단의 수익 모델은 다단계 방식과 유사하다. “투자자들이 타인의 투자를 유치하면 투자 인원에 비례한 수당을 지급한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일부 피해자는 “가격 하락 없이 원금도 보장된다”는 KOK 재단 측 설명에 투자를 결심했다. KOK 재단은 이 과정에서 세금 미납 등의 문제로 남아공에서 등록이 취소됐고, 싱가포르로 등록지를 옮겼다. 이후 다른 재단이 KOK의 운영·관리권을 인수하는 등 부침을 겪었다. 재단 이름이 변경된 이후에는 다른 토큰이 발행됐다.
그사이 피해자들이 예치한 가상자산은 금세 증발했다. KOK의 운영·관리권이 다른 재단에 인수된 이후, 투자자들이 예치한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이 오입금 방식 등으로 빠져나갔다. 새 재단 측이 투자금 원금 회수도 막았다고 피해자 단체는 주장했다. 또한 투자자들이 KOK 토큰을 팔 때 국외 거래소에서 다른 가상자산을 사게 했다고 한다. 이를 국내 거래소로 들여와 파는 방식으로 현금화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국내 거래소에 흔적을 남기지 않았다는 의미다.
현재 KOK 토큰은 회생 불가한 것으로 보인다. 2022년 한때 거래소에서 개당 7달러까지 올랐다가 개당 0.01달러 밑으로 떨어졌다. 거래도 사실상 마비됐다. 해외 거래소 ‘쿠코인(KuCoin)’은 6월3일 KOK 토큰의 상장폐지를 공지했다. 쿠코인은 KOK 토큰 거래량의 90% 이상이 이뤄진 곳이다. 거래소는 상장폐지 사유로 특별 규정을 언급했다. 규정에 따르면 낮은 유동성, 토큰 발행팀이나 구성원의 현행법 위반 정황 등의 이유가 있다면 상장폐지가 가능하다.
수사 선상에 오른 관계자들은 혐의를 부인했다. KOK 재단의 운영·관리권을 인수한 김아무개씨는 “과거에도 무혐의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서울동부지검장·수원고검장 출신 김관정 변호사 등을 선임하며 대응에 나섰다. KOK 토큰을 홍보한 송아무개씨 역시 피해자 단체의 주장에 대해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그는 피해자 단체 측과 사건을 보도한 언론 등에 대해 수사를 의뢰하며 강경한 태도도 내비쳤다.
국내 최대 다단계 사건의 주범으로 알려진 조희팔
‘얼굴 마담’ 나선 유명인이 피해 키우는 요인
수조원대 피해를 양산한 다단계 사건은 이번만이 아니다. 다단계는 총책-모집책-판매원-하위 판매원 등으로 연결된다. 특정인에게 가입을 권유해 하위 판매원을 늘리는 피라미드식 구조다. 피해자가 다수일 수밖에 없다. 가상자산을 활용한 사기는 특히 기승을 부리는 추세다. 중국 등에 둥지를 튼 업체가 국내 투자자들의 피해를 양산한 MBI·ICC 사건 등이 대표적이다(시사저널 4월14일자 “‘이종근 변론 논란’으로 본 다단계 사건들…탈북자도 당했다”, 5월31일 “‘중국계 말레이시아인과 코인 사기’ 다단계 조선족 사기범 추가 기소” 기사 참조).
문제는 가상자산 사건의 특수성이다. 가상자산은 국경을 넘나들며 온라인에서 거래된다. 추적이 쉽지 않을뿐더러, KOK 사건에서 불거진 의혹처럼 가상자산 지갑에서 증거인멸도 가능하다. 사건 발생 즉시 가상자산 동결 등의 조치가 이뤄지기 힘든 이유다. 이러한 가상자산 사건은 물건 판매를 고리로 한 과거 사건에서 진화한 형태다. ‘단군 이래 최대 다단계 사기’로 불린 조희팔 사건으로부터 20년이 흐른 이후 피해 규모는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한 모습이다.
‘얼굴 마담’으로 나선 유명인은 피해를 키우는 요인이다. KOK 재단은 2019년 9월 서울 용산구의 한 호텔에서 ‘인더스트리4.0 & 크리에이팅 뉴 모멘텀 서울 2019’ 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다수 정치인의 축사가 이어졌다. 당시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인 노웅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선동 전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의원 등이다. 피해자 단체 측은 “모집책들이 이러한 영상을 보여주며 투자를 유도했다”고 주장했다. 유명인이 검증되지 않은 자리에 나선 것만으로도 피해를 키울 수 있다는 취지다. 과거 밸류인베스트코리아(VIK) 등 사건에서도 유명인들의 홍보 행위가 논란이 됐다.
금융피해자연대 고문 이민석 변호사는 “정치인과 전관 법조인 등 비호 세력 때문에 다단계 피해가 반복된다”며 “KOK 사건에서도 정치인뿐 아니라 고검장 출신의 전관 변호사가 등장한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특히 “전 정부의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수사단 폐지도 금융범죄 피해를 키운 요인”이라고 했다. 합수단은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 시절인 2020년 1월 검찰의 직접수사 부서 축소 방침에 따라 폐지됐다가 2022년 5월에 부활했다.
제도 개선도 필요한 상황이다. 김민혁 법무법인 YK 변호사는 “거래소가 해외에 있다면 수사기관이 외국 기관에 수사 공조, 협조를 요청하는 등의 과정을 거쳐야 수사가 진전될 수 있다”면서 “범죄 수단 등이 되는 가상자산에 대해 즉각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국가적 단위의 협조, 시스템 등이 구축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범죄 인지 시 즉각 동결 조치 등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입법 등의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고도 했다.
사이버범죄 대응을 위한 국제협약의 필요성도 제기된다. 부다페스트 협약으로 불리는 사이버범죄협약은 사이버범죄 수사를 위한 유일한 국제 조약으로 평가된다. 국가 간 디지털 증거 수집 협조, 가입국 간의 국제공조수사 체계 구축 등을 골자로 한다. 쉽게 말해 사이버범죄가 발생한 경우 협약국 사이에서 정보를 공유하고 수사 협조를 한다는 것이다. 외교부는 2022년 10월 가입의향서를 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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