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범죄단 사기멘트 번역, 방조 아닌 공모”
이른바 ‘캄보디아 범죄단지’ 인근에 근거지를 둔 한중 불법 투자리딩사기(투자를 권유한 뒤 투자금을 가로채는 범행) 조직에서 중국어를 한국어로 바꿔주는 번역 일에 가담한 30대 남성이 실형에 처해졌다. 이 남성은 자신이 단순 번역 업무를 맡은 것으로 사기를 방조했을 뿐 조직과 공모해 사기를 주도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30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형사5부(김현순 부장판사)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혐의로 기소된 A(30대) 씨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A 씨는 2023년 9월 25일~11월 27일 캄보디아 프놈펜에 자리한 투자리딩사기 조직에서 번역팀 팀원으로 일하며 약 19억 원을 조직에 벌어다 준 혐의를 받는다. 번역의 대가로 A 씨는 1400여만 원을 조직으로부터 챙겼다.
A 씨가 몸 담은 범죄조직은 캄보디아 프놈펜에 자리했다. 프놈펜에는 ‘범죄단지’로 불리는 대규모 보이스피싱·투자리딩사기 구역이 존재한다. 각종 사이버 범죄의 소굴로서 경찰 단속도 무용한 사실상의 치외법권이다. 중국계 조직이 대다수인데, A 씨가 가담한 조직은 중국인 사장 5명과 한국인 사장이 지분을 나눠 운영했다. 사무실에는 100여 명이 들어갈 만한 넓은 방이 4곳 있었다. 방마다 중국인 50~60명이 각자 맡은 범행을 수행했다.
조직에서 A 씨는 ‘번역팀’ 소속이었다. 중국인 유인책들이 SNS를 통해 투자에 관심 있는 사람을 모집하려 할 때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뤄지도록 중국어를 한국어로 바꿔주는 게 그의 일이었다. A 씨는 하루에 12시간씩 80~100개의 투자사기 관련 글을 한국어로 옮겨 중국인 유인책들에게 전달했다. 주로 ‘유망한 코인거래소가 있으니 코인에 투자해 보라’는 내용이었다. 이 조직에는 A 씨를 포함해 8명의 한국인이 번역팀에서 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중국인 조직원들의 지시에 따라 번역 업무를 담당했을 뿐 직접 사기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사기를 방조한 책임은 인정될 수 있더라도 투자 사기 범행 전반을 주도하지는 않았다는 취지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같은 주장을 배척했다. A 씨의 번역이 조직의 사기 범행을 완성하는 데 기여한 데다, 자신의 행동이 사기 범죄의 완성을 돕는다는 가능성을 알고도 본인 이익을 위해 중국인들에게 편승해 자신의 뜻을 실행했다는 판단이다.
재판부는 “조직 관리자의 지시에 따라 중국인 조직원들이 투자사기 범행에 사용할 문구를 번역하고 이를 자연스럽게 다듬는 등의 방법으로 범죄조직이 사기 범행을 실행에 옮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 대가로 조직으로부터 상당한 액수의 보수를 받은 것으로 보이는 바, 자신의 행위가 불법적인 영역에 속한다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면서도 경제적 이익만을 좇아 범행을 저질렀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