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억 전세사기 후 미국 도피 부부…구속 재판 중 보석 허가
대전에서 60억 원대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혐의로 미국으로 도피했다 붙잡혀 재판받는 부부가 보석으로 석방돼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을 받게 됐습니다.
오늘(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전지방법원 형사5단독은 지난달 19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남 모(49)씨 부부의 보석(보증금 등 조건을 내건 석방)을 허가했습니다.
이들은 2019년부터 2023년까지 대전에서 11채의 다가구주택을 매입한 뒤 세입자 90여 명을 대상으로 전세보증금을 충분히 반환할 수 있는 것처럼 속여 62억 원을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이 부부는 고소장이 접수되기 전인 2022년 미국으로 건너가 약 2년 동안 도피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경찰청은 인터폴에 적색수배를 요청했고, 지난해 9월 미국 시애틀 인근에서 검거돼 지난해 말 국내로 송환됐습니다.
남 씨 부부의 보석 허가조건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재판부는 지난 1월 구속기소된 남 씨 부부가 제약 없이 석방되는 구속 만기일 전에 여러 조건을 내건 보석으로 석방을 허가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형사소송법상 형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 수용자 신분인 피고인은 1심에서 최장 6개월까지만 구속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구속 기간이 만료되면 재판 중이어도 석방되며, 같은 혐의로는 재구속이 불가능합니다.
보석 심문기일에서 남 씨 측은 법인회사 명의 부동산 5채를 처분해 변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당시 남 씨는 "피해자가 발생하게 된 점은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하고 마음 아프다"며 "그동안 구속된 상태라 우리 명의 부동산들을 처분할 수 없었는데, 나가게 되면 적극적으로 처분해 변제하겠다"고 말했습니다.
남 씨 변호인 측은 "피고인의 초등학생 자녀가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외출하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불안 증세에 시달리고 있다"며 "피고인들을 풀어준다고 해서 도주 우려나 증거인멸 염려는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남 씨 부부의 석방을 알게 된 피해자들은 허탈해하고 있습니다.
한 피해자는 "우리 보증금을 들고 도주해 호화로운 도피 생활을 하던 범죄자들을 힘들게 적색수배까지 해서 잡아 왔는데, 도주한 이력이 있는 범죄자들을 다시 풀어줘서 아무렇지 않게 돌아다니게 하는 게 맞는지 묻고 싶다"며 "씁쓸하고 허탈해서 어떤 말도 안 나온다"고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피해자 측 변호인인 천호성 변호사도 "지금까지 합의 요청도 없는 상태에서 실질적인 피해 변제가 아무것도 이뤄진 게 없는데 피고인들을 보석으로 풀어주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습니다.
남 씨 부부는 미국 도피 생활 초반에 애틀랜타 지역 고급 주택에 살며 아들을 고급 사립학교에 보내는 등 호화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피해자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습니다.
피해 세입자 중 1명은 보증금 8천만 원을 돌려받지 못해 2023년 극단적 선택을 하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