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헬스케어 펀드판매 사기혐의 전 은행원 무죄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가 발생한 이탈리아헬스케어 펀드 사건 2심 재판에서 법원이 1심 판결을 뒤집고 책임자로 지목된 하나은행 전 직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허위 정보를 상품을 판매하는 프라이빗뱅커(PB)에게 제공한 것을 넘어 ‘투자자를 속이기 위해 PB를 도구로 이용했다’는 것이 증명돼야 한다는 취지인데,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유사 금융사기 사건에서 유죄를 입증하기가 한층 까다로워질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6-3부(재판장 이예슬)는 이달 7일 하나은행 전 직원 신모씨의 특경범상 사기와 자본시장법 위반, 사기 혐의에 대해 1심의 유죄 부분을 파기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이탈리아헬스케어 펀드는 이탈리아 병원들이 지방 정부에 청구할 진료비 매출채권에 투자하는 사모펀드 상품으로 2017년 10월 처음 판매됐다. 그러나 2019년 12월부터 투자금 상환이 연기되기 시작해 이듬해 판매가 중단됐고 390여명의 투자자에게 1100억원의 피해액이 발생했다. 신씨는 해당 펀드에 대해 조기상환이 가능하고 이탈리아 지방 정부가 보증하는 안전한 상품이라고 투자자들을 속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신 씨는 2017년 5월~2019년 9월 하나은행 투자상품서비스(IPS) 본부 차장으로 근무하며 사모펀드 출시 등을 담당했다.
2심에서 판단이 바뀐 결정적인 이유는 1심과 달리 재판부가 신씨와 PB들 사이의 공모관계를 쟁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1심은 지난 2023년 12월 신씨가 ‘허위 정보로 투자자들을 속이려는 의도’를 가진 점을 인정해 사기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2심은 신씨가 직접 투자자들에게 상품을 판매한 것이 아니라 PB를 통해 판매한 점에 주목했다. 이에 재판부는 신씨와 PB들 간의 공모관계를 밝히라는 석명을 요구했고, 검찰은 이를 반영해 간접정범 형태로 공소장을 변경했다. 간접정범이란 자기 자신의 행위가 아니라 타인을 도구로 이용해 범죄를 실행하는 경우를 의미한다.
하지만 재판부는 신씨와 PB들이 간접정범 관계에 있지 않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신씨가 기망의 고의를 가지고 PB들에게 허위정보가 담긴 이메일을 발송했다”면서도 “PB들을 도구로 이용해 기망 행위를 적극적으로 유발하고 이용했다고 단정하기 부족하다”고 했다.
신씨와 PB들은 지시와 감독, 평가를 하는 상하관계에 있지 않고 신씨가 PB들에 보낸 이메일은 참고 자료 이상의 영향력은 없었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이번 판결이 확정되면 거짓 정보를 PB들에게 보낸 것만으로는 혐의 인정이 어렵고 ‘PB를 도구로 활용한 기망 행위’까지 입증해야 한다는 기준이 생기면서 범죄 성립 요건이 더욱 엄격해질 가능성이 있다.
현재 투자자들이 하나은행을 상대로 진행 중인 민사소송에도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사기죄가 인정되지 않게 되면 이를 이유로 한 계약 취소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한 법조인은 “형사 재판 결과 때문에 투자자들에게 불리한 부분이 생긴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2심 판결문에도 ‘펀드에 관해 일부 내용이 과장되거나 허위 정보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가 있다’는 부분이 있어 착오로 인한 계약 취소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했다.
법원이 “하나은행이 펀드 설정을 사실상 주도한 것이 아니다”고 판단한 점은 금융감독원 처분과 배치된다. 금감원은 작년 6월 종합검사 결과 이탈리아헬스케어 펀드를 하나은행의 OEM 펀드라고 보고 하나은행의 요청을 받은 자산운용사들에 제재를 내렸기 때문이다. OEM 펀드는 운용사가 아닌 판매사의 기획과 설계 아래 운용되는 불법 펀드를 말한다.
그러나 재판부는 “수익구조와 위험요인 등 펀드 설정을 사실상 주도한 주체는 역외펀드 운용사와 총수익스와프(TRS) 증권사지 하나은행이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하나은행이 펀드 운용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아 OEM 펀드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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