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과장, 차장도 좋다"…5년새 옷벗은 공직자 3900명 [관가 포커스]
"공무원 그만두고 대박 터졌죠."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은 종종 조석 HD현대일렉트릭 부회장 이야기를 꺼낸다. 행시 25회인 그는 지식경제부(현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에너지정책국장, 산업경제정책국장, 2차관을 지냈다. 2020년 HD현대일렉트릭 사장에 오른 그는 이듬해 자사주 5000주를 1억원에 사들였다. 이 회사 주식은 폭등해 그의 자사주 가치는 17억5000만원으로 뛰었다.
회사 실적·주가를 끌어올렸고, 자기 자산도 불린 조 부회장은 공무원들 사이에서 성공적 이직 사례로 꼽힌다. 조 부회장을 꿈꾸며 관가를 떠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거나 인사 적체에 눌려 퇴직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 5년 새 민간기업으로 새 둥지를 튼 공직자만 3900명을 넘어섰다.
6일 인사혁신처에 따르면 지난해 민간 기업·기관 이직을 위해 취업 심사를 신청한 퇴직 공무원은 831명으로 이 가운데 91.6%인 762명이 취업 승인 판정을 받았다. 취업 승인 기준으로 역대 최대인 전년(887건)에 비해서 14.1% 줄었다. 하지만 2020년(761명), 2021년(749명), 2022년(744명) 등 예년에 비해서는 많은 수준이다.
최근 5년(2020~2024년) 동안 민간으로 이직한 공직자 출신은 총 3903명으로 나타났다. 공무원은 퇴직 후 민간 기업으로 재취업하려면 사전 취업 심사를 받아야 한다. 취업 심사 대상 기관은 올해 기준으로 2만4591곳이다.
그동안 경찰청, 검찰청, 국방부, 국세청 출신 공무원의 민간기업 이직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핵심 경제부처 공무원의 이직도 적잖다. 지난해 민간으로 이직하기 위해 취업 심사를 신청한 기획재정부 출신 공무원은 3명, 산업통상자원부 출신은 23명에 달했다.
이들 부처에서 에이스로 통하는 인사들도 관가를 등지고 있다. 행시 46회인 김현익 기재부 전 자금시장과장은 지난해 CJ그룹의 싱크탱크인 CJ미래경영연구원 임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경제정책국에서 물가구조팀장, 거시정책과장 등 경제정책 주요 보직을 돌았다.
젊은 직원들도 관가를 이탈하고 있다. 지난해 기재부를 떠난 10년차 이하 사무관은 8명으로 집계됐다. 이들은 대부분 로스쿨에 진학한 것으로 알려졌다. 젊은 공무원의 이탈은 기재부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공무원연금공단에 따르면 임용 후 5년 미만 신규 공무원 퇴직자는 2019년 6500명에서 2023년 1만3566명으로 2배 이상 늘었다.
대기업 임원이 아닌 과장·차장 자리로 옮긴 공무원도 적잖다. 지난해 1월 감사원 6급 공무원은 다우기술 과장으로 옮겼다. 지난해 케이뱅크 차장과 신한라이프생명보험 프로(차장급)로 자리를 옮긴 금융감독원 4급 직원들도 있다. 국세청 7급 직원 2명은 각각 지난해 4월, 5월에 신한투자증권 차장, 한국투자증권 차장 자리로 이직했다. 지난해 11월 한 경찰청 경위는 교보생명 과장으로 옮긴 바 있다.
관가를 이탈하는 공무원들이 늘었다는 소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들이 공직을 등지는 것은 민간에 비해 낮은 연봉과 과중한 업무부담 등이 꼽힌다. 한 기재부 과장은 "대기업에 터를 잡은 대학 동기들과의 연봉 격차가 상당하다"며 "내 연봉이 얼마인지 밝히는 것조차 부끄러울 데가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인사 적체가 상당하다. 세종 중앙부처 근무자들은 국회와 서울청사를 찾아 출퇴근하면서 쌓인 피로도도 상당하다.
김익환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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