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 DLS 환매지연 사태 네 탓 공방…1심 "NH, KB에 40% 배상"
약 1000억원 규모 '무역금융펀드 파생결합증권(DLS) 환매 연기 사태' 관련 책임 소지를 다룬 소송의 1심 선고가 KB증권이 소송을 제기한 후 4년 만에 내려졌다. DLS를 발행한 NH투자증권이 판매사 KB증권 청구금액의 40%를 배상하란 판결이다. 서로 책임을 떠넘겨 온 두 증권사 간 공방이 진전을 이루면서 이들 회사에 대한 투자자 소송도 본격화할 전망이다.
26일 한경닷컴 취재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1부민사부는 지난 20일 열린 부당이득반환 청구 소송 1심 재판에서 'NH투자증권은 미상환금액의 약 40%인 339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KB증권이 NH투자증권을 상대로 낸 이 소송에서 요구한 1076억원은 만기 상환에 실패해 환매가 지연된 '판매액 전액'이다. KB증권이 NH투자증권에 전액을 물어내라고 요구한 가운데, 재판부가 NH투자증권에 약 절반의 책임을 지운 것이다.
두 회사의 책임을 모두 인정한 1심 판결에 양사는 모두 납득하기 어려워 항소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소송전의 발단은 홍콩 자산운용사인 트랜스아시아(TA)가 만든 수출입기업의 매출채권에 투자하는 무역금융 펀드(TA 인슈런스 무역금융)를 기초자산으로 NH투자증권이 아시아 무역금융 펀드(ATFF)와 연계해 DLS를 발행하면서다. DLS의 발행은 NH투자증권에서, 판매는 KB증권에서 이뤄졌다. 무역 환경이 큰 타격 없이 성장을 이어갔을 경우 기대수익률은 연 4.3% 수준이었다.
KB증권은 2019년 3월부터 12월까지 투자자 200여 명에게 해당 DLS인 'KB able DLS 신탁'(TA 인슈런스 무역금융) 상품 1055억6500만원어치를 팔았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TA 무역금융펀드가 대출을 해준 기업들도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펀드는 최초 만기 시점이었던 2020년 4월 투자자들에게 투자금을 돌려주지 못했다. 투자자들로부터 책임 추궁을 받게 된 KB증권은 법적 분쟁을 택했다.
KB증권 측은 당초 현지 운용 사정에 밝은 NH투자증권 설명에 기초해 투자 의사결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가운데, NH투자증권이 자사에 상품 구조·위험성 등을 잘못 안내했다는 주장이다. 때문에 KB증권은 소송을 통해 판매금 전액을 돌려받고 이를 피해를 본 투자자들에게 주겠단 계획이었다. KB증권 관계자는 "1심이 명쾌하게 책임 소재를 짚은 게 아니어서 더 다퉈봐야 한다"며 "판매만 한 우리로선 NH투자증권이 전액 배상해줘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반면 NH투자증권 측은 코로나19 사태란 변수로 상환이 지연된 것이어서, 고객의 피해는 안타깝지만 NH투자증권이 상품 구조나 위험성 등을 잘못 설명한 부분은 없기 때문에 책임을 질 부분은 없다는 입장이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항소해 NH투자증권 측 배상비율을 40%에서 더 낮추려고 노력할 예정"이라고 했다.
양사 모두 자사 쪽의 책임이 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자기 방어에 열중이다. 소송가액이 1000억원을 웃도는 '대규모 환매 지연' 상황인 만큼, 소송 결과에 따라 개인·법인 투자자들의 소송 화살이 어디로 향할지도 가려지기 때문이다.
펀드 최초 만기 시점에서 약 5년이 지난 현재까지 손실을 확정하지 않은 채 만기만 수차례 연장되는 가운데 청산 절차는 중단된 상황이다. 만기일은 또다시 오는 5월까지 연장된 상태다. 지난해 말 기준 이들 증권사가 해외 운용사로부터 상환받은 돈은 투자금 전체의 약 18%에 불과하다. 특히 직전인 지난해에는 누적 2.8%만 회수됐다. 현지 회수율에 기대를 걸기 어려운 이유다.
한편 이번 소송 결과가 나오기까지 중단됐던 개인·법인 투자자들의 소송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NH투자증권의 배상비율로 권고된 40%도 KB증권이 당초 투자자들에게 유동성 선지급금 비율로 제시했던 '투자금액의 50%' 수준에도 못 미치기 때문이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