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있으면 할인해드려요"…주주환원 새 전략 뜬다
국내 중견·중소 상장사들이 주주들에게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 할인권, 우대권 등 혜택을 주는 주주우대 서비스에 속속 나서고 있다. 소액주주들에게 각종 혜택을 제공해 중장기 투자를 유도하는 한편 마케팅 효과도 볼 수 있다는 구상이다.
"주식 보유하면 쿠폰 드립니다"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기업설명회(IR) 컨설팅기업 IR큐더스는 최근 신한투자증권과 손잡고 이 증권사의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에 주주우대 서비스 기능을 탑재했다. 투자자가 MTS에서 주주 혜택 제공사의 쿠폰을 받고, 이 쿠폰을 온라인몰이나 서비스 플랫폼에서 쓸 수 있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오뚜기, 비상교육, 휠라홀딩스, 더네이처홀딩스, 시노펙스, 흥국에프엔비, 전진바이오팜 등이 주주혜택을 제공할 예정이다. IR큐더스는 올 1분기 중 다른 국내 증권사 두어곳과도 이 서비스를 추가로 열 것으로 알려졌다. 오뚜기 관계자는 “주주가 자사몰에서 제품을 구매할 경우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형식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여러 업종 상장사가 함께 주주 우대에 나서는 것은 사실상 처음이다. 앞서는 일부 기업이 마케팅 차원에서 한시적으로 주주에게 혜택을 제공했다. 1997년 4~6월 세 달간 기아자동차가 자사 주식을 1000주 이상 보유한 주주에게 자동차를 5% 할인해 판매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2000년대 이후엔 주주에게 리조트·스키장 할인 혜택을 주는 강원랜드 등을 제외하면 주주 우대 정책을 운영하는 기업을 찾기 힘들었다.
일본은 상장사 40%가 주주혜택 제공반면 주주 혜택은 일본에선 이미 널리 자리잡은 제도다. 작년 말 기준으로 일본 상장사의 40% 정도인 1520여개사가 주주혜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2000년 상장사의 17%, 2005년 25% 수준에서 꾸준히 증가했다. 대부분 자사 제품이나 상품권, 할인권 등을 주주에게 제공하는 식이다.
일본에서 가장 큰 수퍼마켓 체인 기업 라이프코퍼레이션은 100주 이상을 1년 넘게 보유한 주주에게 자사 수퍼마켓에서 쓸 수 있는 상품권을 제공한다. 일본맥도날드홀딩스도 같은 기준으로 투자자에게 식사 할인권을 준다. 올초엔 1000개 넘는 상장사에 투자하면서 주주우대 혜택을 모아 외식과 취미활동을 해결하는 한 일본 자산가의 이야기가 홍콩 매체에 보도되기도 했다.
일본 주주들은 투자 결정에 있어 주주혜택을 유의미하게 보는 분위기다. 다이와증권에 따르면 2022년 주주혜택을 폐지한 기업들은 발표 다음날 주가가 평균 5~6% 내렸다.
'주주도 고객, 고객도 주주' 선순환 구상금투업계에선 주주우대 서비스가 저성장 시대 국내 중견·중소 기업들의 주주환원 대안책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주가가 확 뜨거나 배당을 크게 확대하려면 기업의 실적과 이익이 커져야 한다. 당장 업황이나 초기 투자 필요성 등의 이유로 이같은 여력이 없는 기업들의 경우엔 주주 혜택을 통해 주주와 이익을 공유하는 효과를 일부라도 낼 수 있게 된다. 꾸준한 혜택으로 소액주주들의 중장기 투자를 유도해 주가 흐름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도 있다.
기업이 주주 혜택을 통해 주주에게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를 홍보하고, 이를 통해 매출 외연을 키워 주가를 올리는 선순환 구조도 도모할 수 있다. 비상교육 관계자는 “기업이 주주이자 고객인 투자자와 장기간 함께하고자 한다는 취지로 주주 혜택을 준비하고 있다”며 “잘 쓰는 제품이나 서비스가 있다면 주주의 투자 관심도도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기업은 이르면 다음달 중 자사 교육 앱 등에 대한 쿠폰 혜택을 선보일 예정이다.
외국인·기관은 사용 한계…"대기업은 도입 꺼릴 것"이같은 방식의 주주 혜택 정책이 대기업으로도 퍼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금투업계의 전망이다. 외국인투자자와 기관투자가 등에는 혜택이 가기 어려운 구조라서다. 주주 혜택은 대부분 교환권이나 할인권 형식이라 외국인이나 기관은 받아도 사용하기가 쉽지 않다. 한 기업 관계자는 “외국인 지분 비중이 높은 대기업의 경우엔 외국인과 국내 일반 주주간 차별 논란 등을 우려해 주주 우대 정책에 나서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 입장에선 혜택만 받아가는 ‘체리피커’ 주주도 잠재적 부담 요소다. 투자자가 제품을 구매하기 전에 주식을 사들여 할인 혜택을 받고, 직후에 주식을 팔아버리기도 쉽다는 얘기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일본 상장사들은 주로 주식 보유기간이 1년 이상인 주주를 대상으로 혜택을 지급하고, 보유기간이 길 수록 추가로 우대하는 구조로 제도를 운영한다”며 “이같은 방식을 쓸 수 있다면 개인 투자자들의 중장기 투자를 촉진하는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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