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 추진하니…주가 지수 되레 올랐다고? [양병훈의 해외주식 꿀팁]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서 의결돼 헌법재판소로 넘어갔습니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추진은 증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정치적 불확실성이 커지기 때문에 증시 조정의 원인이 된다"는 말이 가장 손쉽고 교과서적인 답변인 듯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다른 나라의 사례를 살펴봤습니다. 1990년대 이후 탄핵안이 추진됐던 여덟 개의 사례와 그 기간 해당 국가의 주가지수 흐름을 확인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오른 사례가 더 많았습니다. 예상을 뒤엎는 결론이네요. 그렇다고 "대통령 탄핵은 증시에 좋은 영향을 준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증시가 오르내리는 데는 수많은 변수가 영향을 미치고, 탄핵이라는 정치적 사건은 그중의 하나에 불과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대통령의 지위 불안이라는 정치적 사건이 꼭 증시 조정을 야기하는 건 아니다"라고는 말하는 것은 가능한 듯 보입니다.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죠. 신흥국 중에서는 페루, 칠레, 브라질, 남아프리카공화국, 인도네시아, 필리핀에서 1990년대 이후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추진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 가운데 칠레만 의회에서 탄핵안이 부결됐고(우리나라는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여부를 확정하지만 칠레는 의회 의결로 이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실제 탄핵으로 연결됐습니다. 미국에서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기각),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기각) 등 두 건의 탄핵 추진 사례가 있었습니다.
각각의 탄핵 추진 사례를 ▲대통령의 위기가 불거진 뒤 탄핵 심판이 시작되기까지 ▲탄핵 심판이 시작된 뒤 탄핵 여부가 확정되기까지 ▲탄핵 여부 확정부터 3개월 뒤까지의 기간으로 구분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기간에 이들 나라의 대표 주가지수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살폈습니다. 예컨대 브라질의 사례로 설명하면 이런 식입니다.
①대통령의 위기가 불거진 뒤 탄핵 심판이 시작되기까지 : 브라질 연방감사법원(TCU)이 "정부의 예산이 너무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다"는 이유로 2015년 4월 15일 이 문제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브라질 연방 상원이 2016년 5월 12일 이 문제에 대한 책임을 물어 지우마 바나 호세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심판을 시작했습니다.
②탄핵 심판이 시작된 뒤 탄핵 여부가 확정되기까지 : 연방 상원의 조사는 3개월 이상 이어졌습니다. 결국 상원은 2016년 8월 31일에 투표를 통해 그에 대한 탄핵을 확정 지었습니다(브라질도 칠레처럼 의회 의결로 탄핵 여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③탄핵 여부 확정부터 3개월 뒤까지 : 호세프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확정된 2016년 8월 31일부터 3개월 뒤인 2016년 11월 31일까지의 기간입니다.
각각의 구간에서 브라질의 대표 주가지수인 보베스파지수가 어떻게 변했는지를 살펴봤습니다.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사건이 점점 고조되는 첫 번째 구간에서는 이 지수가 2.26% 하락했습니다. ②그러나 사건의 절정에 해당하는 두 번째 구간에서는 이 지수가 11.01% 올랐습니다. ③탄핵 결정이 나온 이후에 해당하는 세 번째 구간에서는 이 지수가 5.69% 올랐습니다.
페루에서는 페드로 카스티요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습니다. 그의 정치적 위기는 법무부가 2022년 6월 11일에 그를 부패 혐의로 조사하기 시작하면서 불거졌습니다. 카스티요 전 대통령은 이에 대한 대응으로 "의회를 해산하고 비상 정부를 수립하겠다"고 2022년 12월 7일에 기습적으로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도는 전혀 통하지 않았습니다. 당일 페루 의회는 이 해산 명령을 무시하고 그에 대한 탄핵안을 일사천리로 가결했고, 카스티요 전 대통령은 바로 공직에서 해임됐습니다. 법무부의 조사 시작부터 탄핵까지 페루의 S&P Lima General지수는 9.01% 올랐고, 이후 3개월 동안은 0.41% 조정받는 수준에 그쳤습니다.
남아공에서는 제이콥 주마 전 대통령이, 인도네시아에서는 압둘라흐만 와히드 전 대통령이, 그리고 필리핀에서는 조셉 에스트라다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했습니다. 남아공 FTSE/JSE All Share지수는 ①주마 전 대통령의 위기가 시작된 뒤 탄핵안이 공식 추진되기까지 2.63% 떨어졌습니다. 그러나 ②탄핵안 가시화부터 대통령 파면까지는 2.34% 올랐습니다. 그리고 ③파면 이후 3개월 동안은 2.46% 상승했습니다. 인도네시아 IDX지수의 흐름은 ①17.40% 하락→②31.10% 상승→③15.00% 하락이었고, 필리핀 PSE지수는 ①4.44% 상승→②2.98% 하락→③1.03% 하락이었습니다. 인도네시아의 지수 등락 폭이 컸던 건 당시 발생했던 닷컴버블의 영향이었습니다.
미국과 칠레에서는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추진됐지만 결국 기각된 사례가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S&P500지수가 트럼프 1기의 탄핵 기각 뒤 3개월 동안 13.01% 떨어졌고 이 외에는 모두 올랐습니다. 떨어진 기간에 하락의 주된 원인은 코로나19 사태였습니다. 칠레에서는 세바스티안 피녜라 전 대통령이 위기를 맞았을 때 S&P CLX IPSA지수가 5.17% 하락했지만, 탄핵안이 본격 추진된 이후에는 오히려 줄곧 올라서 하락분을 만회하고도 남았습니다.
조재운 대신증권 연구원은 "증시의 중·장기적 상승은 결국 그 나라 경제와 종목의 기초체력(펀더멘털)에 달려 있다"며 "특히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는 단기 뉴스와 이슈에 흔들리기보다 펀더멘털에 집중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양병훈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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