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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화상회의부터 일정 7건 쉴 새 없이 소화…유니콘 조력자의 삶 [하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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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직업은 수두룩하다. 접근 난이도는 높은데 막상 주어진 정보는 많지 않다. [하루만]은 이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베일을 걷어 보려 한다. 증권·운용사부터 정부 부처까지, 또 말단 직원부터 기업체 사장에 이르기까지 직종과 직급을 가리지 않고 누군가의 '하루'를 빌려 취재한다. [지난 기사 보기 <"지수가 안 넘어왔어요"…긴박했던 야간파생시장 상황실의 밤 [하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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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업력에도 단숨에 신의 직장이 된 빅테크들이죠. 이들이 일명 '될성부른 떡잎'이란 사실을 남들보다 먼저 알아본 사람들이 있습니다. 벤처캐피털(VC)입니다. 창업자의 눈빛에서 확신을 읽고,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타이밍에 자금을 대서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스타트업)이 되게끔 도와주는 사람들입니다.

투자 심사와 자금 집행, 사후 관리까지 VC의 하루는 베일 속에 있습니다. 비상장 기업과의 거래가 많고 의사결정 과정도 대부분 비공개이기 때문인데요. 지난달 29일 국내 대형 VC인 KB인베스트먼트의 본사 사무실을 찾아 국찬우 투자2부문총괄 겸 보스턴지사장(상무)의 하루를 가까이에서 지켜봤습니다.

국 상무는 바이오 심사역으로 굵직한 투자 성과를 쌓으며 KB인베스트먼트를 바이오 명가(名家)로 끌어올린 주역으로 꼽힙니다. 1981년생인 그는 미국에서 의료경영정책과 의료서비스리서치 등을 공부했습니다. 삼정KPMG 의료산업 컨설턴트, 삼성서울병원 미래혁신센터 전략기획 등을 거쳐 2016년 KB인베스트에 합류했습니다.

유니콘 탄생 돕는 VC…시장 영향력 확대일로

'초기 투자자'가 된다는 건 어려운 결정입니다. 미래를 선점하는 동시에 큰 불확실성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죠. 기술이 훌륭해도 경영진이 경험 부족으로 길을 잃을 수 있고, 반대로 팀워크가 좋아도 시장 타이밍을 놓칠 수 있습니다. VC가 없었다면 수많은 유니콘의 탄생도 없었을 겁니다.

VC는 남의 돈으로 펀드를 만들어 굴립니다. 연기금·대기업들로부터 투자 자금을 받은 뒤 펀드를 결성하고, 그 돈으로 스타트업을 발굴·투자합니다. 펀드 결성 과정은 '펀드 레이징', 투자처를 찾는 일은 '딜 소싱'이라고 부릅니다. 투자가 실패하면 전부 잃지만 '대박' 땐 수십배로 돌려받습니다. 투자한 자본 대비 더 큰 금액으로 회수할수록 심사역들이 받는 인센티브도 커집니다.

VC의 시장 영향력은 계속 커지고 있습니다. 벤처캐피협회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올해 33개사가 코스닥시장에 상장했는데 이 가운데 81.8%(27개사)이 VC 투자를 받았습니다. 이 비중은 2022년 59.8%, 2023년 54.4%, 2024년 63.1%에 이어 올해까지 꾸준한 상승세입니다.

"바쁘다 바빠" 출근하자마자 '보스턴 콜'

지난달 29일 아침 7시45분, 서울 청담동 신영빌딩 10층 KB인베스트먼트 국 상무의 개인 사무실. 막 출근한 그는 글로벌 경제 포털인 '야후파이낸스'에서 간밤의 미국 증시를 간단히 확인한 뒤, 화상회의를 준비합니다. 국 상무는 한국 본사 대표로 미국 보스턴 현지 지사 직원들과 매주 화요일 '보스턴 콜'을 주재합니다. 보스턴은 세계 최대 바이오·제약 허브입니다. 때문에 현지에서 발굴한 따끈따끈한 투자 기회와 시장 동향을 매주 시차를 맞춰 공유하고 있습니다.

"How are you?" 오전 8시가 되니 노트북 화면에는 KB인베스트먼트 보스턴 지사 직원들의 얼굴이 하나둘 뜹니다. 국 상무는 직원들과 간단한 인사와 휴가 계획 등 근황을 주고받은 뒤 곧바로 어느 바이오텍 투자 건으로 화제를 옮겼습니다.

이날 회의는 투자 결정을 하기 위한 사전 검토 목적이 컸습니다. 국 상무는 임상 데이터 질의응답을 하고 현지 펀드매니저들과의 온도차를 꼼꼼하게 확인했습니다. 특히 어느 항체약물접합체(ADC) 개발 기업을 두고선 보스턴지사 동료들과 '이 회사의 링커 기술이 다른 ADC와 어떻게 다른가'를 두고 열띤 토론을 벌였습니다.

약 30분간의 화상회의가 끝났습니다. 기자가 내내 국 상무 옆자리를 지켰지만 정작 기자의 메모장에 기록된 건 단어 몇 개뿐이었습니다. 영어와 바이오 전문용어가 쏟아져 통역 앱이 절실했습니다. 심사역을 하려면 영어도 잘해야 하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국 상무는 "아무래도 바이오는 기술 검증 과정이 많아 논문이나 학술지를 읽고 해석하는 속도와 깊이감이 투자 판단의 질을 좌우한다"고 답했습니다.

8시30분. 숨 돌릴 틈도 없이 국 상무는 노트만 챙겨 들고 맞은편 회의실로 향했습니다. 윤법렬 사장이 이끄는 바이오투자본부 격주 회의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현재 투자 검토·집행 단계인 신규 바이오 투자 건이 무엇인지, 투자금 회수 현황은 어떤지 공유하는 자리입니다.

"통과냐 보류냐"…VC 투자의 핵심 관문 '투심'

회의가 끝나고 국 상무는 부리나케 나와 9층으로 향합니다. 오전 9시부터 한 유전자치료제 A사에 대한 최종 투자심의위원회(투심)가 열리기 때문인데요. '투심'은 최종 승인을 받으면 실사와 집행 절차로 이어지기 때문에, VC 투자의 핵심 관문으로 불립니다.

A사를 발굴한 딜팀이 준비한 심사 보고서에는 대상 기업의 업황과 사업의 개요부터 투자 포인트, 리스크(위험), 회수 방안 등이 담겼습니다. 담당 심사역은 1대주주 구성을 상장사 중심으로 재편해 상장 가능성을 높이고, 창업자 지분을 조정하는 구조를 설계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구주를 더 구할 순 없었어요?" (국 상무)

"특별히 구주를 더 확보해서 신주와 동일비율로 맞춘 겁니다." (담당 심사역)

국 상무는 수시로 심사역의 발표를 끊고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런 내부 투자심사 절차는 운용 인력 과반의 지지를 받아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고 합니다. VC 투자 승인까지는 일반적으로 예비 심사, 기업설명(IR), 예비 투심, 실사, 최종 투심, 투자 집행 순의 절차를 따르게 되는데요. 냉정하게 투표해야 객관적으로 '좋은 투자'를 끌어낼 수 있기 때문에 최종 투심 때의 투표는 블라인드 방식으로 진행된다고 합니다.

국 상무는 "투심 논의 때 모든 심사역들이 처음부터 만장일치를 이루는 건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다"며 "서로 치열하게 토론하고 다른 시각을 주고받는 과정이 있어야 안건이 더 단단해진다. 최종 투심에 올리기 전까지는 한두 시간씩 토론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고 했습니다.

이어 10시30분부터 약 1시간 동안은 신약개발 기업 B사와의 IR 미팅이 이어졌습니다. 글로벌 시장에 두 차례 라이선스를 한 바 있는 B사는 유상증자를 앞두고 국 상무를 찾아 사업 전망과 향후 계획을 설명했습니다.

점심까지 남은 시간은 30분. 국 상무는 자리에 복귀했지만 의자에 앉아있을 틈이 없습니다. 개인 사무실에 나서더니 파티션 사이를 돌며 심사역들마다 "어떻게 돼가?"라며 한 마디씩 건네고 업무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점심도 쉬지 않는다…한 숟갈에 펀드·또 한 숟갈엔 사는 얘기

낮 12시. 회사로 찾아온 국내 대기업 C사 기획팀의 이 부장과 점심 약속이 있습니다. 회사 근처 국 상무가 잘 아는 복집으로 향했습니다. 이 부장은 기업 투자자(LP)로서 KB인베스트먼트와 인연을 맺었다는데요. 출자를 전후로 수십 번을 만나면서 얼굴을 익힌 두 사람은 동네가 같아 퇴근 후에도 가끔 술잔을 기울이는 막역한 사이가 됐다고 합니다.

"절대 일 얘기는 안 하겠다"던 두 사람은 복국을 떠먹으며 결국 펀드 얘기로 돌아갔습니다. 펀드 결성 당시 C사는 자금력이 충분했고, 글로벌 시장의 유망 바이오사·헬스케어 플랫폼뿐 아니라 비(非)바이오 시장도 성장 기회로 보고 있었습니다. 바이오 전용 펀드를 준비하던 국 상무는 각국의 성장 가능성 높은 섹터 기업들을 발굴하는 방향으로 역제안했고, 각자의 갈증을 해소하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펀드 운용은 VC가 맡지만, 애당초 자금이 없으면 펀드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현행 국내 벤처법상 VC 등의 펀드 운용사(GP)들은 펀드의 1%에 해당하는 금액만 출자해도 됩니다. 나머지 대부분의 자금은 LP의 몫인 거죠. 때문에 VC들에게 LP는 펀드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축입니다.

복국 숟갈 사이로 숫자와 시장 얘기만 오간 건 아니었습니다. 휴가 계획, 길 잘못 들어 30분 돌아간 해프닝, 동네 횟집 추천까지 오가는 얘기에 웃음이 이어졌습니다. 딱딱할 것만 같았던 VC와 LP 간 대화도 결국 사람 얘기였습니다. "좋은 투자도, 결국 진정성 있는 관계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좋은 딜은 좋은 관계서 나온다"

오후 2시. 뷰티 유통 분야의 상장사 A사 대표가 국 상무를 찾아왔습니다.

"요즘 틱톡 이용자층은 어떤가요?" (국 상무)

"원래는 20대가 가장 많았는데, 지금은 40~60대가 매달 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처럼 변해가는 셈이죠." (A사 대표)

"그런 변화를 어떻게 활용하세요?" (국 상무)

"인플루언서 계정에 영상을 올린 뒤 저희 숍에서 클릭 수, 3·6·12초 이탈률, 장바구니 담기, 전환 수 등을 데이터로 수집해요. 이를 기반으로 이용자 반응을 살펴보죠." (A사 대표)

VC의 IR 미팅은, 일반적으로 딜 소싱한 비상장사 대표를 초대해 회사 소개를 듣는 자리를 뜻할텐데요. 국 상무에 따르면 상장사와의 미팅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향후 관계 구축이나 후속 거래를 염두에 둔 전략적 성격이 큽니다.

국 상무는 "상장사의 자회사나 관계사 중 우리의 투자 타깃이 있거나, 상장사가 포트폴리오 확장을 위해 비상장사를 찾는 경우 우리가 투자한 기업과 연결해 주는 '브릿지'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VC가 기업의 고민을 모르면 생산적 투자를 할 수 없다. 서로를 잘 알아야만 시너지가 나는 것"이라며 "관계 구축, 즉 기업과의 신뢰를 쌓아두는 일은 시간은 더 걸릴지라도 결국 좋은 딜을 가져오는 가장 확실한 전략"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오후 4시가 돼서야 국 상무는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한국거래소 임원과의 저녁 미팅 전까지 남은 한 시간, 그는 모니터에 최신 학술지를 띄우고 집중해 읽기 시작했습니다. 국 상무는 "아무리 회의와 미팅이 빽빽해도 논문 읽는 시간, 그러니까 공부하는 시간만큼은 하루 두세시간은 꼭 확보한다"며 "그래야 시장과 기술 흐름을 놓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2020년 방영된 드라마 '스타트업' 속 스타 심사역인 한지평 상무는 한강 뷰 아파트에서 여유를 즐기며 연봉 2억원에 성과급 15억원을 챙깁니다. 하지만 현실의 국 상무는 하루 7~8개의 미팅과 회의를 소화하느라 회사 복도를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었습니다. 또 독설로 스타트업 대표들을 몰아붙이던 드라마 속 한 상무와 달리, 국 상무는 이들과 서로 깍듯하게 예의를 갖추며 현실감 있는 조언들을 건넸습니다. 드라마보다 덜 화려했지만, 더 드라마틱하고 인간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종일 회의와 미팅, 보고서, 콜까지 몰아친 일정에도 회사 문을 나서는 그의 얼굴에는 지친 기색이 없었습니다. 어쩌면 VC가 필수로 갖춰야 할 건 숫자 감각보다 강철 체력일지 모르겠습니다.

"VC 일은 투자부터 회수까지 긴 호흡이 필요하기 때문에, 단거리 경주라기보단 몇 년을 두고 완주하는 마라톤에 가깝습니다. VC의 진짜 무기는 몇 년을 버틸 체력과 멘탈(정신력)이죠."

[미니인터뷰]

국 상무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52건, 미국에서 16건의 투자·회수 실적을 기록했다. 국내외 총 투자금 기준 원금 이상을 회수했다. 다음은 국 상무와의 일문일답.

▷VC 심사역은 어떤 직업.

"재무와 전략, 기술 3박자를 모두 갖춰야 하는 직업이라 기술적 도전이 크다. 큰돈이 자신의 손에서 오가고, 또 자기 판단으로 레코드(성과)가 좌우되기 때문에 보람만큼 스트레스도 큰 직업이다. 때문에 1순위 자질로 '강철 체력'과 '흔들리지 않는 멘탈'을 꼽는 것이기도 하다"

▷가장 뿌듯함을 느낄 때는.

"직접 발굴한 딜이 투심을 통과하는 순간부터 기업에게 매출처를 연결해 '세일즈 브릿지' 역할을 하거나 해외 라이선스 아웃을 성공시키는 데 일조했을 때 등 많다. 포트폴리오 기업이 난항 끝에 IPO에 성공했을 때도 기뻤다."

▷인연을 만드는 자신만의 비결은.

"업계 누구든 간에 사심 없이 만나야 한다. 잠재적으로는 그 기업에 투자하겠단 목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초면에는 진정성으로 다가가야 한다. 투자 목적을 앞세우면 관계가 오래갈 수 없다. '이 사람을, 이 기업을 어떻게 옆에서 도와줄 수 있을까'를 고민하며 만난다. 의도 없이 술 한잔 기울이는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투자 인연이 만들어진다."

▷투심에서 유심히 보는 대목은 무엇인지.

"사업성, 시장성, 기술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투자자와의 소통 여부(소통력)를 본다. 소통이 끊기면 신뢰가 무너지고, 좋은 회사라도 투자자와 오래 함께하기 어렵다. 그 신뢰를 지키게 돕는 것, 대표가 투자자와 원활히 소통하도록 이끄는 것까지도 우리의 역할이다."

▷향후 5년간 주목할 바이오 기술 트렌드는 무엇인지.

"앞으로는 RNA 치료제와 한층 진화한 저분자(스몰 몰리큘) 신약이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단백질 분해 유도 기술(PROTAC)이나 항체-약물 결합체(ADC)처럼 항체에 약물을 결합하는 계열이 성장할 것 같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기존 PD-1 항체 특허를 확장하는 영역이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바이오 투자 심사역을 준비하는 후배들에게 조언한다면.

"VC 진입에 석·박사가 최우선 우대 사항은 아니다. 산업계 경험 여부가 훨씬 중요하다. 우리 회사 심사역들도 모두 유관 업종 기업에서 최소 5년을 일했다. 현장감을 피부로 겪어야 투자 판단의 무게가 생긴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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