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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 대신 보람"…MZ 금융위 사무관 밤 10시까지 동행기 [하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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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권 직업은 수두룩하다. 접근 난이도는 어려운데 막상 주어진 정보는 많지 않다. [하루만]은 이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는지 베일을 걷어보려한다. 증권·운용사부터 정부 부처까지, 또 말단 직원부터 기업체 사장에 이르기까지 직종과 직급을 가리지 않고 누군가의 '하루'를 빌려 취재한다. [지난 기사 보기 <펀드매니저 하루종일 따라다녀 봤더니…깜짝 놀랄 3가지]

"당장 통장에 찍히는 숫자만 보고 떠나가는 후배들을 볼 때마다 착잡해요. 이 길도 멋진 삶이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뛰어난 사람들과 함께 땀 흘리고, 치열하게 성장하는 이 시간이 제겐 돈 이상의 가치거든요."

1993년생 만 31세 김이재 청년정책과 사무관(사진)은 금융위원회에서 '인간 비타민'으로 통합니다. 매일같이 잔업과 야근, 회식을 소화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아 붙은 별명인데요. 공무원들에게 1년 중 업무량과 스트레스가 최고조에 이른다는 국감 시기 김 사무관을 만나 그의 하루를 들여다봤습니다. 국회 정무위원회 금융위 국감 사흘 전인 지난달 7일의 기록입니다.

"청년금융정책, 내 손으로 변화 만든다"

부처와 부서별 편차가 있지만 행정직 공무원은 야근이 일상입니다. 각종 현안 대응으로도 바쁜 데다 정보공개 청구 등 민원의 절대적 양도 전보다 늘었습니다. 국정감사·예산 심의 때를 전후로 국회에서 요구하는 자료도 밤새가며 준비해야 할 만큼 방대합니다.

김 사무관은 격무에서도 보람을 최우선에 놓았습니다. 그는 "돈도 중요하지만 지금으로선 '공무'를 다루는 뿌듯함이 더 크다"며 "내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세상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김 사무관은 매일 오전 6시께 일어납니다. 경제뉴스와 청년정책 상품을 다룬 유튜브 영상들을 들으면서 산책을 다녀온 뒤, 조간스크랩 기사들을 읽으면서 아침 식사를 챙깁니다. 사는 곳에서 청사(금융위)까지는 걸어서 10분 거리인데요. 이 짧은 출근길도 허투루 쓰지 않습니다. '오늘 해야 하는 업무들이 무엇인지' 머릿속으로 목록화해 우선순위를 매긴다고 합니다.

"아…" 꽉 채워 보낼 하루를 앞두고 한숨인지 기합인지 모를 소리로 깊이 숨을 내쉬며 사무실에 도착했습니다. 오전 8시50분입니다.

연말 국감을 앞두면 주로 서류 작업에 하루 대부분을 씁니다. 김 사무관은 출근 이후 약 1시간30분간 국감 대비용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각 부처 공무원들은 국감 수개월 전부터 의원들이 요구하는 외부제출용 국감 자료를 만들고, 의원별 관심사항을 미리 분석해 질의응답에도 대비해야 하거든요.

김 사무관이 속한 청년정책과의 핵심 과업은 '청년도약계좌'입니다. △청년도약계좌 가입실적이 저조한데 예산을 많이 신청하는 이유 △청년층 지원 대책 △청년 부채 해결을 위한 제도 개선 방향 등 뼈아픈 질문들을 직접 만들어 가며 모범 답변까지 준비해야 합니다. 행여 의미가 달라질까 단어의 조사 하나하나도 신경 써서 적습니다. 그가 작성한 질답들은 숙련된 부서 과장과 국장을 거쳐 다듬어집니다.

어느 정도 자료 준비를 끝낸 뒤, 곧바로 예산 관련 설명자료 만들기에 들어갔는데요. 연말 예산 확정 전 각 부처 부서는 예산을 최대한 끌어오기 위해 심의 과정에서 의원들 설득에 힘을 쏟습니다. 틈틈이 기획재정부 담당 사무관과 연락해 사업 운영 현황과 예산 관련 상황을 공유받는 것도 김 사무관의 역할입니다.

어느새 책상 위는 서류로 가득. 콜라만 벌써 두 캔째입니다. 김 사무관은 "콜라는 탄산이 가득해 업무 스트레스와 갈증을 한 번에 풀기엔 최적"이라며 웃었습니다. 그의 책상 안쪽에는 '우루사' 등의 간 보호제와 피로 해소에 좋은 비타민B 영양제들이 즐비합니다. 잦은 회식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선 필수죠. 벽 한쪽에는 부드러운 솜뭉치 인형 키링이 걸려있는데요. 액세서리로 걸어놓았지만, 화를 삭여야 할 때 조용히 움켜쥐는 용도로 쓴다고 김 사무관은 귀띔했습니다.

장관 보고에 외근, 회의 주재까지 "바쁘다 바빠"

오전 10시40분. 휘몰아치듯 오전 업무를 끝낸 김 사무관은 "장관님(김병환 금융위원장)께 보고를 해야 한다"며 일어났습니다. 국감을 코앞에 둔 만큼 위원장에게 각 과의 주요 현안과 참고 사항들을 보고하는 시간입니다. 부서장인 청년정책과장이 직접 보고하지만 사무관들도 배석합니다. 금융위는 설명의 양과 질을 높이고 '주니어'들에게 보고 환경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 장관 보고 때 실무자들을 참관시키고 있습니다. 일반 기업으로 따지면 사장실에 매번 들어가는 셈인데, 그 사이 경험치가 쌓였는지 김 사무관에게서 긴장된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11시45분. 점심을 먹으러 기자와 서촌 파스타 가게를 찾았습니다. 일할 때는 말도 걸기 무서울 정도로 바빠 보였지만 식사 때 만큼은 '자연인' 모드였습니다. 성격 유형 테스트인 'MBTI' 결과를 주고받고 서로의 직업 생활 장단을 공유하며 밥을 먹었습니다. 요리 대결 예능인 '흑백요리사'에 출연한 요리사들 식당에 대해서도 한동안 수다를 떨었습니다. 금융위 근처에서도 한 중식집이 방송을 탔는데, 그 덕에 식당에 얼씬도 못 하고 있다며 아쉬워했습니다.

오후 1시. 빠듯하게 사무실로 복귀했습니다. 회의 준비를 마친 뒤 2시에 맞춰 청사 13층 중회의실로 내려갑니다. 업무상 긴밀한 협조 관계에 있는 서민금융진흥원 청년금융직원부(김미혜 부장·김용석 팀장) 직원들과의 미팅입니다. 이들은 청년도약계좌와 관련해 운영 현황과 제도 개선 추진 현황, 업무 일선에서 느끼는 애로 등을 공유하기 위해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납니다. 현안에 따라 회의에 은행연합회와 신용정보원, 금융연구원 관계자들이 참석하기도 합니다.

"가장 중요한 원스톱 청년금융 컨설팅센터는 어떻게 돼 가나요?" (김 사무관)

"저소득 저연령 비정기적 소득자, 정기적 소득자 등 컨설팅 대상별로 처한 상황이 달라 콘텐츠도 달라져야 하기 때문에 진단 내용과 매칭프로그램을 세분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요." (김 부장)

너스레가 오갈 만큼 화기애애한 분위기였지만 회의가 시작되자 네 사람의 표정에는 진지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이 점검회의는 황기정 청년정책과장과 김 사무관이 번갈아 가며 직접 주재합니다.

오후 3시20분. 택시를 타고 여의도 국회로 이동합니다. 의원실들을 비롯해 입법조사관을 만나 이번 청년정책과 예산안을 설명하는 자리입니다. 관가에 전해지는 '예산 따내기' 노하우에 따르면 문자보다는 전화, 전화보다는 얼굴로 최대한 자주 찾아가 정성을 표현하는 게 필수입니다.

격무에 밥 먹듯 야근이어도…"보람차니까"

약 한 시간 동안 국회에서 머물다 나온 김 사무관은 다시 금융위로 복귀했습니다. 오후 6시30분까지 오전에 못다 한 서류 작업을 끝냈습니다. 기자와 '일일 야근 동지'로서 저녁 식사도 함께했는데요. 청사 1층 휴게공간에서 샐러드 도시락을 먹던 김 사무관은 "주요 과제들을 '올스톱'한 채 몇 날 며칠을 고생해 준비했는데 국감에서 제발 큰 일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면서도 "질문이 한 개도 안 나오면 그건 그것대로 맥이 빠지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에겐 저녁 식사 이후의 잔업이 본격 업무 시간입니다. 오전에 내부 참고자료를 만들고 오후에 회의와 외근, 출장을 다녀오면 하루가 금방 가서 정작 담당 업무 보고서를 작성할 시간이 적기 때문인데요. 일주일에 두세 번은 운 좋으면 정시 퇴근이지만, 남은 날들은 오후 9~10시까지 야근이 필수입니다. 이날 그는 청년도약계좌 개선방안과 청년금융여건 개선을 위한 추진방향 세부화 작업을 했습니다.

오후 7시30분쯤 각자의 업무공간으로 복귀한 우리는 밤 10시가 다 돼서야 로비로 나왔습니다. 퀭한 눈을 하고도 "할 일을 다 해 뿌듯하다"는 김 사무관이었습니다. 그는 "어차피 돈 보고 들어온 직장이 아니다"면서 "공무를 통해 성취감을 얻고 거기서 비롯되는 수많은 기회와 가능성을 얻는 데서 재미를 찾았다"고 밝혔습니다.

김 사무관은 도맡아 추진한 일이 실현돼 국민의 삶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줄 때 보람이 정말 크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그는 "같이 일하는 금융위 사람들이 업의 만족도를 채워준다"며 "선배와 동료들이 좋은 정책을 내놓기 위해 진심으로 고민하는 모습을 볼 때, 돈을 포기하고 나라를 위해 일해보겠다고 이 곳에 들어오는 후배들을 볼 때 저도 더 정진해야 겠다는 각오를 한다"며 웃었습니다.

[미니인터뷰]

김 사무관이 속한 청년정책과의 핵심 과업인 청년도약계좌에 대해 소개한다. 다음은 김 사무관과의 일문일답.

청년도약계좌 가입 현황은.

"지난달 31일 기준 청년 152만명이 청년도약계좌를 개설했다. 지난달 말(145만9000명) 대비 6만여명이 는 것. 현 가입 추세 유지 시 연말까지 160만명이 예상된다. 금리 인하로 시중 상품 대비 매력이 상대적으로 커지고 기여금 지원 확대 방안이 시행되는 점 등을 감안하면 내년 중엔 약 70만명이 추가로 들어올 전망."

예산 편성은 어떻게.

"예산이 모자라 청년 가입을 못 받는 상황이 일어나는 것보단, 이들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사업 취지에 더 부합한다. 이런 점을 고려해 예산 편성 중이다."

만기가 길다는 지적이 있는데.

"청년도약계좌의 핵심은 청년들이 중장기적 관점에서 자산을 축적해 보는 경험을 갖게 하고, 그렇게 모은 돈이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데 충분한 수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때문에 만기를 짧게 가져간다면 이런 정책 취지가 퇴색될 우려도 있어서 고민이 컸다. 그 결과 3년 이상만 유지하면 재정 혜택도 일부 지급하고 세제혜택은 만기 유지 때와 동일하게 지원하는 것으로 바꿨다. 결혼과 출산, 주거 마련 등 '급돈' 목적으로 중도해지할 땐 페널티 없이 그간의 혜택을 모두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추진 중인 개선사항은.

"청년들이 긴급 자금 수요에 대응할 수 있도록 부분인출서비스(2년 이상 가입자 해당)를 도입할 예정이다. 또 성실히 납입한 청년이면 신용점수도 가점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계획. 기여금 지원 수준 확대는 가장 큰 변화다. 앞으로는 모든 소득구간의 매칭한도를 납입한도까지 늘리고, 이 확대 구간에는 매칭비율 3%를 적용할 예정이다."

고충이 있다면.

"어느 정책이든 절대선을 찾는 게 아니다 보니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되고, 공무원으로서 모든 이들에게 만족을 주지 못할 때 아쉽다. 위험성이 0이면서 5년간 이 정도 수익률을 보장해 주는 상품을 찾기 힘들다. 그래도 유튜브 같은 채널에서 도약계좌 장점을 알아보고 설명해줄 땐 뿌듯하다.

가입자 수나 중도해지자 수로 지적들이 나오는 데 있어선 아쉬움이 있다. 정부가 상품을 팔아 이익을 남긴다든가, 실적을 올려 인센티브를 얻는 구조가 아니다. 청년들에게 안정적인 자산형성의 기회를 열어주는 것에 의미를 뒀다. 물론 통계 수치가 '잘 만들어진 제도'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지표가 될 수 있겠지만, 단순히 많은 가입자를 만드는 게 이 정책의 목표는 아니란 점을 알아줬으면 한다."

신민경 한경닷컴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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