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만에 1200억 됐다"…개미들 퇴직연금 들고 몰려든 곳 [김연지의 연금빌드업]

키움증권의 '주식개미'가 '연금개미'로 변모하고 있다. 올해 6월 퇴직연금 사업에 뛰어든 키움증권은 두 달여 만에 적립금 1200억원과 개인형퇴직연금(IRP) 가입자 9000명을 확보했다. IRP 가입자의 96%는 기존 키움증권 거래 고객이었다.
후발주자임에도 초기에 이 같은 성과를 거둔 점은 퇴직연금 시장의 경쟁축이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키움증권은 자평했다. 기업이 정한 금융회사에 연금을 맡기던 데서 벗어나 주식 투자에 익숙한 개인이 직접 금융회사의 투자 환경을 비교하고 연금자산을 옮기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근로자가 키움증권 모바일트레이딩시스템(MTS) ‘영웅문S#’에 신설한 '퇴직연금 도입 요청'을 통해 기업에 키움증권 도입을 요청한 사례가 600여곳에 달했고, 이 가운데 40여곳이 실제 계약으로 이어졌다고 소개했다.
16일 이승진 키움증권 연금전략팀장은 한경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퇴직연금 시장은 기업과 오프라인 중심에서 실제 연금자산의 주인인 가입자 중심으로 이동할 것"이라며 "근로자가 상품뿐 아니라 어느 금융회사에서 자신의 연금을 운용할 것인지까지 비교하고 요구하는 시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주식개미가 연금개미로…"타사에서 78% 끌어왔다"
키움증권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난달 1000억원을 넘어선 뒤 지난 12일 약 1200억원대로 불어났다. 이 가운데 78%가량은 다른 금융회사에서 이전된 자금이다.
현재 적립금은 대부분 IRP에 몰려 있다. 확정급여형(DB)과 확정기여형(DC)은 기업이 키움증권을 퇴직연금 사업자로 추가하기 위해 가입자 동의와 규약 변경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키움증권은 기업들이 통상 연말에 사업자를 추가하거나 변경하는 만큼 올해 말이나 내년부터 DB·DC 적립금도 유입될 것으로 예상했다.
키움증권이 주목한 점은 IRP 가입자 가운데 기존 고객이 96%에 달한다는 것이다. 키움증권에서 주식을 거래하던 개인투자자들이 다른 금융회사에 맡겨둔 연금자산까지 옮긴 결과라고 전했다.
이 팀장은 "키움증권에서 주식 거래를 해온 고객들이 영웅문의 투자 환경과 매매 방식에 익숙하다는 점이 작용했다"며 "기존 고객의 투자 경험이 IRP로 확산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키움증권은 퇴직연금이라고 해서 별도의 투자 환경을 새로 익히게 하지 않는 데 초점을 맞췄다. 영웅문 이용자는 국내 주식 주문 화면에서 계좌만 바꿔 위탁계좌와 IRP 계좌를 오갈 수 있다. 기존 주식 거래 화면에서 IRP 계좌를 선택해 상장지수펀드(ETF)를 실시간 매매하는 방식이다.
타사 MTS 사용자환경(UI)의 경우 기존 주식과 퇴직연금 시스템이 분리된 경우가 많지만, 키움증권은 시스템을 새로 구축하는 과정에서 주식 거래와 퇴직연금 원장을 통합했다.
이 팀장은 "고객에게 퇴직연금 투자를 위해 새로운 것을 다시 공부하거나 익히도록 요구하지 않았다"며 "기존 이용자가 하던 방식 그대로 연금을 운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 차별점"이라고 말했다.
근로자가 도입요청…600여곳 요청·40여곳 계약키움증권은 개인의 선택을 IRP에만 한정하지 않고 기업의 퇴직연금 사업자 선정 과정으로 넓히고 있다. 근로자나 법인 담당자가 앱에서 자신의 회사에 키움증권을 사업자로 추가해 달라고 신청하는 '퇴직연금 도입 요청' 서비스를 통해서다.
사업 개시 이후 600여개 사업장에서 도입 요청이 접수됐으며, 이 가운데 40여곳이 실제 계약을 체결했다. 지점과 법인 영업망을 중심으로 금융회사가 기업을 찾아가던 기존 영업과 달리 근로자의 요구에서 사업자 선정 논의가 시작되는 구조다.
다만 현행 제도에서는 근로자가 요청했다고 사업자를 곧바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퇴직연금 사업자를 선정하고 계약하는 주체는 기업이며, 사업자를 추가하려면 가입자 동의와 규약 변경 등의 절차도 필요하다.
그럼에도 근로자의 요청이 실제 기업 계약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의미가 있다고 키움증권은 강조했다. DC는 회사가 부담금을 납입한 뒤 근로자가 직접 상품을 선택하고 운용 결과도 근로자에게 귀속되지만, 정작 금융회사 선정은 주로 기업이 주도해왔다.
이 팀장은 "퇴직연금의 실제 주인은 근로자인데 그동안 사업자 선정 과정과 주요 의사결정은 회사에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며 "근로자가 원하는 금융회사를 회사에 요청하고 이것이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는 것은 국내 퇴직연금 시장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라고 말했다.
'큰 사업자'보다 '쓰기 좋은 사업자'로
퇴직연금 제도가 도입된 지 20년이 지나면서 가입자가 보유한 연금자산도 커지고 있다. 물가 상승에 대응하기 위해 연금계좌에서도 직접 투자하려는 수요가 늘면서 상품 구성뿐 아니라 거래 편의성과 장기 운용을 돕는 서비스도 금융회사를 고르는 기준이 되고 있다.
키움증권의 퇴직연금 적립금은 실적배당형 상품과 원리금보장상품이 약 7대 3의 비율로 구성돼 있다. 실적배당형 상품에서는 ETF의 활용이 활발하다. 시장 대표지수를 추종하는 상품부터 반도체와 미국 대형 기술주 관련 상품까지 투자 대상도 다양하다.
다만 손쉬운 실시간 매매가 장기자산인 퇴직연금에서도 잦은 거래를 부추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키움증권은 ETF 적립식 투자와 이자·분배금 재투자, 인공지능(AI) 자산배분 등을 통해 장기·분산투자를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이 팀장은 "거래를 편리하게 만드는 것과 잦은 거래를 유도하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퇴직연금은 취업 이후 수십 년간 운용하고 은퇴 뒤에도 관리해야 하는 자산인 만큼 적립식 투자와 분산투자, 자산배분이 기본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앞으로 사업자의 경쟁력은 단순히 적립금이 많거나 대형 금융회사라는 데서 나오지 않을 것"이라며 "가입자가 얼마나 쉽고 편리하게 접근하고, 장기적으로 연금자산을 쌓을 수 있는 경험을 제공하느냐에서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김연지 한경닷컴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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