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A 따도 갈 곳이 없다"…트럭시위 나선 합격자들 [선한결의 회계포커스]
올해 공인회계사(CPA) 시험 최종합격자 중 수습기관을 찾지 못한 이른바 '미지정회계사'들이 금융감독당국 등에 대한 규탄 시위에 나섰다. 미지정회계사들이 대규모 단체 행동에 나선 것은 2002년 이후 22년만이다.
미지정회계사들, 비대위 꾸려 트럭시위30일 회계업계에 따르면 올해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자 중 80여명은 '공인회계사 합격자 미지정 문제 해결 촉구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전날부터 트럭 시위를 벌이고 있다. 비대위는 전날 금융위원회를 겨냥해 서울 광화문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시작한 이 시위를 금융감독원, 감사원 등 앞에서도 벌일 계획이다.
미지정회계사들은 금융감독당국이 업계 수요와는 관계없이 회계사 선발 인원을 무작정 늘렸다며 선발 인원 전면 재검토 등을 요구하고 있다. 비대위는 "금융위가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근거를 바탕으로 내년도 공인회계사 선발인원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며 "미지정 회계사 문제 해결을 위한 태스크포스(TF) 등을 신설해 즉각적인 해결 조치를 마련할 것도 요청한다"고 밝혔다.
업계는 인력수요 둔화…CPA 합격자는 '최다'올해 회계업계는 대규모 인력 수급 미스매치를 겪고 있다. 경기 침체 우려에 기업들의 인수합병(M&A)·컨설팅 시장 등이 예상보다 활성화하지 못하면서 회계법인들의 인력 수요는 예년 대비 둔화했다. 반면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인원은 매년 증가세다.
올해 공인회계사 선발인원은 1250명이었다. 작년(1100명)에 비해 150명 많다. 이중 삼일PwC, 삼정KPMG, EY한영, 딜로이트안진 등 4대 대형회계법인은 파트타임 회계사까지 합쳐서 약 840명을 채용했다. 빅4 채용인원과 공인회계사 합격자 수간 격차가 400명 이상으로 벌어진 것은 지난 10년 내 올해가 처음이다.
여기에다 중견·중소 등 이른바 '로컬' 회계법인의 총 채용 규모는 많아도 200명 안팎일 것이라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올해 합격자 중 약 200명은 연내에 수습 기간을 보낼 회계법인을 찾지 못할 공산이 크다는 얘기다.
"일반 기업 수요도 높지 않아" vs "전문가는 늘 수록 좋다"공인회계사 시험 최종합격자는 회계법인과 기업 등 실무수습기관에서 2년간 수습 기간을 거쳐야 정식 전문 자격을 얻는다. 금융감독원과 예금보험공사 등을 비롯해 외부감사를 받는 일반 기업, 은행, 보험사 등의 회계 관련 부서에 근무하면서 수습 기간을 인정받을 수 있다.
이를 두고 앞서 금융감독당국 등에선 공인회계사 자격증 보유 인원을 꾸준히 늘려 전문 인력이 일반 기업과 공공기관 등으로도 많이 흘러가야 사회 전반의 회계투명성이 높아진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자들이 회계법인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이다. 업계 인원을 늘려야 한다는 회계업계 일각의 목소리도 있다. 신(新)외부감사법 수성을 비롯해 세무·결산감사 등 각종 사안에 대해 업계 영향력을 키울 수 있어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회계업계 관계자는 "전문가가 사회 곳곳에 많을 수록 사회 전반의 효용이 늘어난다"고 했다. 그는 "라이센스(자격증)가 직업을 보장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수습기관 또한 합격자가 찾는 것이지 제삼자에게 배정의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닌 만큼 미지정회계사들의 요구가 정식으로 받아들여지긴 어려울 전망"이라고 말했다.
반면 시험 합격자들의 시각은 다르다. 폭넓은 실무 경험을 쌓기 위해선 회계법인에서 수습 기간을 보내는 것이 아무래도 유리하다. 일반 기업의 회계 담당 인력 수요가 확 증가한 분위기도 아니라는 게 이들의 입장이다.
비대위는 이날 "시험 합격자들이 일반 기업 채용 면접에서 '기회가 있다면 회계법인으로 이직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여럿 받았다"며 "일반 기업에서 수습회계사를 채용할 유인이 있는 것인지 되묻고 싶다"고 했다.
금융감독당국은 회계업계 등과 논의해 내년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자 하한선을 다음달 중 발표할 예정이다. 이를 앞두고 최근 주요 회계법인 등에 실제 인력 수요를 파악하기 위한 설문조사를 벌였다.
회계업계에선 당국의 시험 합격자 최소인원 발표와 함께 인원 산정 근거를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 것으로 보고 있다. 한 회계법인의 고위 관계자는 "공인회계사 합격 최소인원 등을 논의하는 공인회계사 자격제도 심의위원회가 있지만, 실제 인원을 결정하는 과정 등은 공개가 되지 않는다"며 "올해 분위기로는 회계업계의 수급 관계를 얼마나 반영했는지 설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선한결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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