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이 지뢰밭"…불성실공시에 우는 개미들
2차전지 업체 금양은 지난 5일 불성실공시법인으로 지정됐다. 예고했던 45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철회하면서다. 지난 1년간의 누적 벌점이 17점에 달하며 하루 동안 거래가 정지됐다. 6일 거래가 풀리자마자 금양 주가는 26.1% 폭락했다.
올 들어 불성실공시법인 지정이 늘어나며 개인투자자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경기 악화로 상장사들의 사업 계획 수정이 잦아진 가운데 금융당국의 엄격해진 감시가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다. 실적 컨센서스(추정치)가 불분명한 코스닥시장의 중소형주에 투자할 땐 더욱 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불성실’ 피해 엑소더스이날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올 들어 불성실공시법인 지정 건수는 총 30건이다. 21건이었던 작년 동기 대비 42.9% 늘었다. 지난해 전체로는 지정 건수가 158건으로, 역대 최대였다. 시장별로 보면 코스닥 소속 종목이 21건으로 가장 많았다. 유가증권시장은 7건, 코넥스시장은 2건으로 집계됐다.
불성실공시법인은 공시 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을 때 한국거래소가 벌점 등 제재를 가하는 제도다. 주로 유상증자·전환사채(CB) 발행 취소나 공급 계약 해지 등이 문제가 된다. 15점 이상 벌점이 누적되면 관리 종목으로 편입해 상장폐지까지 될 수 있다.
투자심리에 미치는 영향은 무척 크다. 금양의 경우 작년 10월에도 불성실공시법인에 오른 적이 있어 투자자 이탈이 두드러졌다. 당시 금양은 몽골 광산의 실적 추정치를 부풀려 벌점 10점과 2억원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최근 1년 내 최대 액수다. 이 상태에서 벌점 7점 부과로 관리종목이 되자 코스피200 퇴출과 함께 개인(-36억원)을 중심으로 순매도세가 나타났다.
공시가 ‘지뢰’가 되는 상황은 다른 기업도 마찬가지다. 유상증자 납입기일을 6개월 이상 변경한 소재 업체 소니드(-45.3%)와 제주맥주(-7.7%), 2차전지 업체 제이오 인수합병(M&A)과 유상증자를 철회한 반도체 기업 이수페타시스(-14.3%) 등이 공시일을 기준으로 주가 하락을 면치 못했다. 금전 대여와 채무보증 정정 사실을 지연 공시한 고려아연 주가도 공시 이후 13.1% 급락했다. 코오롱생명과학과 STX처럼 공급 계약 해지나 축소로 타격을 받은 곳도 있다.
◇ 섣부른 공시가 독(毒)으로불성실 공시가 늘어난 배경 중 하나로 부진한 경기 흐름과 무분별하게 증가한 상장사 수가 지목된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올해도 실적이 부진한 중소형 상장사를 중심으로 유상증자나 전환사채(CB) 발행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 시도가 이어졌다”며 “기업 성장성을 낮춰 잡은 투자자들이 호응하지 않아 변경·취소되는 사례가 잦았다”고 말했다.
한국거래소가 ‘좀비 기업’ 퇴출에 칼을 빼 들었지만 갈 길이 멀다는 평가다. 국내 증시 상장기업 수는 총 2864개다. 작년 동기(2790개) 대비 74개 늘었다. 올해 불성실공시법인 중엔 소니드와 삼부토건의 최대주주였던 디와이디처럼 주가가 1000원 미만인 ‘동전주’도 수두룩하다.
한 중소형주 전문 투자사 대표는 “불성실 공시는 주로 조달에서 문제가 불거지기 때문에 재무 상황이 불안정하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특히 2차전지처럼 업황 전망이 좋지 않거나 충분한 IR(기업설명) 활동이 없는 중소형주는 투자에 신중해야 할 시기”라고 짚었다.
이시은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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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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