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은, 기준금리 3.00% ‘동결’…“경기보다 환율 우선 고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오전 서울 중구 한은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출처=한국은행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가 새해 첫 기준금리를 3.00%로 유지하기로 했다. 지난해 10월과 11월 두 차례 연속 금리를 0.25%포인트(p)씩 낮춘 뒤 숨 고르기에 나선 모습이다.
한은 금통위는 16일 오전 서울 중구 한은에서 올해 첫 통화정책방향 회의를 열고 현재 연 3.00% 수준인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이날 금통위 전까지 시장에서는 ‘동결’과 ‘인하’ 두 전망이 팽팽하게 맞섰다. 비상계엄 사태와 탄핵 정국으로 위축된 소비·투자 등 내수를 살리려면 금리를 더 낮춰 이자 부담을 줄여줘야 하지만, 환율로 인한 외환·금융시장 불안을 고려하면 섣불리 금리를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지난 14일 금융투자협회가 발표한 ‘2월 채권시장 지표(BMSI)’에 따르면 채권 관련 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동결과 인하 전망은 각각 60%, 40%로 집계됐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오전 서울 중구 한은에서 열린 새해 첫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출처=한국은행
고환율‧멀어진 美 금리 인하 기대에…3연속 인하 ‘시기상조’
금통위는 이날 통화정책방향 회의 의결문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하게 된 배경에 대해 “물가상승률 안정세와 가계부채 둔화 흐름이 이어지는 가운데, 예상하지 못한 정치적 리스크 확대로 성장의 하방 위험과 환율 변동성이 커졌다”라며 “국내 정치 상황과 주요국 경제 정책의 변화에 따른 경제 전망‧외환시장의 불확실성이 확대된 만큼 현재의 금리 수준을 유지하면서 대내외 여건 변화를 좀 더 점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라고 밝혔다.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도 한은이 동결을 결정한 데에는 고환율에 대한 우려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원‧달러 환율은 작년 11월 초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선 이후 미국 물가·시장금리 상승 기대 등으로 뛰기 시작해 1400원 위로 올라왔다. 지난달 3일 비상계엄 선포 이후 상승 폭을 키운 환율은 연말 금융위기 이후 처음 1480원을 돌파했다.
새해 초에도 국내 탄핵 정국, 트럼프 2기 정부 출범에 따른 강(强)달러 전망 등과 맞물려 1400원대를 이어가고 있다. 추가로 금리를 인하하게 되면 원화 가치가 더 떨어져 환율이 1500원까지 급등할 수 있다.
미국의 금리 인하 속도 조절 분위기도 동결 결정의 주요한 요인으로 꼽힌다.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는 오는 28~29일 올해 첫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결정할 예정이다. 시장에서는 연준이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 크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한국과 미국의 기준금리 차는 1.50%p 수준이다. 한은이 금리를 2.75%로 낮춰 미국과의 금리 차가 1.75%p로 더 벌어지면 원화 약세로 인한 환율 상승이 심화하고, 외국인 투자자금 유출 위험이 커질 수 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금통위 직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경기 상황만 보면 지금 금리를 내리는 것이 당연하다”라면서도 “이자율은 경기뿐 아니라 여러 변수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그 영향을 같이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계엄 사태로 시작된 정치적 변화가 환율에 크게 영향을 주고 있다”며 “현재 환율은 우리나라 경제 펀더멘털이라든지 미국과의 기준금리 격차 등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정치적 불확실성을 포함해 대내외 부문의 불확실성이 큰 상태”라면서 “지난해 이뤄진 두 차례의 금리 인하 효과도 지켜볼 겸 숨 고르기를 하면서 정세에 따라 (금리 인하 여부를) 판단하는 게 더 신중하고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라고 전했다.
이 총재는 “현재 환율이 필요 이상으로 올라가 과거보다 환율 수준의 영향이 커졌다고 본다”라며 “높아진 환율이 물가 등 내수에 미치는 영향을 유의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출처=한국은행
금통위원 6인 “3개월 내 금리 인하 가능”
이 총재에 따르면 이날 금통위 결정 과정에서 신성환 금융통화위원이 유일하게 기준금리 0.25%p 인하가 바람직하다는 소수 의견을 냈다.
신 위원이 소수 의견을 낸 이유로는 “환율 등 대외 부문이 걱정되는 건 사실이지만 금리 인하 방향성이 이미 외환시장에 반영되고 있다고 봤다”라면서 “환율 상승이 물가 상방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경기 둔화로 수요 측 물가 압력이 줄어들 것으로 판단해 경기에 중점을 두고 금리를 인하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이라고 설명했다.
이 총재는 “(신 위원 의견에) 다른 분들 모두 동의했다”라면서도 “대외 요인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일단 대내 요인에 방점을 두고 한번 쉬었다 가는 게 좋겠다는 결론을 냈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3개월 동안의 통화 정책 방향에 관해서는 이 총재를 제외한 금통위원의 의견이 일치했다.
그는 “금통위원 6명 모두 3개월 이내에 현재 연 3.00%보다 낮은 수준으로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을 열어놔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국내 경기가 예상보다 좋지 않은 상황인 만큼 단기적으로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과 대외 경제 여건의 변화를 확인한 이후에는 금리 인하 추세를 계속해 경기에 대응하는 일이 바람직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금통위원 6명 가운데 금리 인하 소수 의견을 낸 사람은 1명이지만, 내용상으로는 5대1이라는 숫자가 보여주는 것보다 다양한 의견이 많았다”라면서 이번 기준금리 결정이 쉽지 않았다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그는 “통화 정책만 가지고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든지 통화 정책에 모든 부담을 넘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통화 정책 외에도 추가경정예산(추경)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이날 이 총재는 다시 한번 빠른 추경 편성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작년 12월 18일 물가 ‘물가안정목표 운영상황 점검 기자간담회’에서도 조기 추경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소비 심리가 악화한 상황에서 어차피 (추경을) 할 거라면 가급적 빨리 하는 게 좋다”라면서 “성장률이 떨어지고 있고, 통화 정책 외 경기 부양에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추경 규모에 관해서는 “성장률이 잠재성장률 밑으로 낮아진 만큼 보완하는 정도로 추경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며 “15조~20조원 정도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제안했다.
추경은 일시적으로 경기에 대응하기 위해 단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무차별적인 지원보다는 것보다 어려운 자영업자 등을 제한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게 이 총재의 입장이다.
전날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과 관련해 이 총재는 “어제 일로 정치적 불확실성이 많이 줄어들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
등록일 19:50
-
등록일 19:46
-
등록일 17:16
-
등록일 1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