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 "호랑이도 풀밭 있어야 생존"... 재계 "지방에 300조 투자"

이재명 대통령이 4일 국내 10대 그룹 총수들을 청와대로 초청, 경제 생태계의 복원을 강조하며 지방 투자와 청년 고용 확대를 주문했다.
재계는 향후 5년간 지방에만 약 270조 원, 최대 300조 원에 달하는 대규모 투자를 집행하겠다고 화답했다. 코스피 5000시대 개막과 수출 호조라는 거시경제 성과를 지방 소멸 위기 극복과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실물경제의 온기로 확산시키겠다는 정부와 재계의 ’원팀’ 의지가 확인된 자리였다는 평가다.
이재명 대통령이 기업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역 상생의 길 열어야"
이 대통령은 이날 오후 2시 청와대 본관 인왕실에서 열린 ’청년 일자리와 지방투자 확대를 위한 기업간담회’ 모두발언을 통해 기업과 경제를 생태계에 비유하며 상생의 철학을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경제는 생태계라고 한다. 풀밭도 있고 메뚜기도 있고 토끼도 있어야 호랑이도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며 "잘못하면 풀밭이 망가지겠지만 그게 호랑이의 잘못은 아니다. 사실 제일 큰 책임은 생태계를 관리하는 정부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기업들이 열심히 노력해 경제가 조금씩 숨통을 틔우는 가운데 성장의 과실이 더 넓게, 기성세대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에 새롭게 진입하는 청년 세대에게도 골고루 퍼졌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대기업(호랑이)의 성장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과 지방경제(풀밭)라는 토대가 튼튼해야 함을 강조한 것으로 낙수효과가 멈춘 현재의 경제 구조를 ’지방 균형 발전’과 ’청년 고용’을 통해 순환 구조로 바꾸자는 제안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 대통령은 수도권 집중 현상을 악순환의 고리로 규정, 정부 차원의 강력한 균형발전 정책인 ’5극 3특’ 체제를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관념은 수도권에서 벗어나면 큰일 날 것처럼 생각하고 있어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정부가 5극 3특 체제를 통해 지방에 새로운 발전의 중심축을 만들고 집중 투자할 것인 만큼 기업들도 이에 보조를 맞춰달라"고 요청했다. 나아가 "서울에서 거리가 먼 지역을 가중 지원하는 제도를 법제화해 지방의 교육·문화 인프라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류진 한경협 회장이 대화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300조 원 투자 계획 발표
재계는 즉각적으로 화답했다.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은 "현재 주요 10개 그룹이 향후 5년간 약 270조 원 규모의 지방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며 "10대 그룹 외의 투자를 모두 합치면 300조 원 수준까지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류 회장은 "청년 실업과 지역 경제 침체가 맞물린 구조적 문제를 끊어내는 일이 시급하다"며 "과감한 투자로 지역에 생기를 불어넣고, 소외된 지방 청년들에게 취업 기회를 제공하겠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인 실행 방안으로는 신규 채용 확대와 더불어 인공지능(AI) 전산 교육, 인턴십, 현장 맞춤형 훈련 등 교육·훈련 프로그램의 대폭 확대를 제시했다.
류 회장은 정부를 향해 "기업들의 투자와 고용 계획이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파격적인 규제 혁파와 지원을 부탁드린다"고 요청했다.
한편 이날 간담회에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장인화 포스코그룹 회장,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 정기선 HD현대 회장, 허태수 GS그룹 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등 재계 거물들이 총출동했다.
정부 측에서는 구윤철 경제부총리와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청와대에서는 강훈식 비서실장, 김용범 정책실장, 하준경 경제성장수석,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 등이 배석해 기업들의 애로사항을 청취했다.
이 대통령은 간담회를 마무리하며 "기업이 성장하고 발전해야 국민의 일자리가 생기고 국가도 부강해진다는 생각은 명확하다"며 "정상외교 또한 철저히 기업이 필요로 하는 국가와 의제를 중심으로 추진하겠다"고 말해 참석한 총수들의 박수를 받았다.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회장이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한편 기업간담회는 시종일관 화기애애하면서도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100분간 진행됐다. ’반기업 정서’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듯 이재명 대통령은 재계 총수들에게 각별한 예우를 갖췄고 총수들 역시 정부의 정책 방향에 적극적인 공감을 표했다.
이 대통령이 행사장으로 입장하자 미리 대기하고 있던 10대 그룹 총수들이 기립해 박수로 맞이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은 가장 먼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이 대통령은 이 회장의 손을 잡으며 "해외 일정이 잡혀 있었는데 이번 간담회 때문에 취소하고 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며 말을 건넸다. 이에 이 회장은 환한 미소와 함께 "국가와 경제를 위한 자리인데 당연히 와야 합니다"라고 답해 좌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정의선 현대차 회장, 최창원 SK 부회장 등 참석한 총수들과 일일이 눈을 맞추며 악수를 나눴다. 구광모 LG 회장과는 AI 산업 생태계에 대한 짧은 덕담을 주고받았으며, 신동빈 롯데 회장에게는 최근의 유통 산업 변화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기도 했다.
본격적인 간담회에 앞서 환담 시간에는 이 대통령과 총수들이 테이블 위에 놓인 ’지방 투자 활성화 로드맵’ 자료를 함께 들여다보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정기선 HD현대 회장이 구광모 LG 회장에게 자료의 특정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의견을 나누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오찬 메뉴로는 탕평채와 비빔밥이 올랐다. 청와대 관계자는 "각기 다른 재료가 섞여 조화로운 맛을 내는 비빔밥처럼, 정부와 기업, 수도권과 지방이 하나로 어우러져 경제 도약을 이루자는 ’화합’의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간담회 도중 이 대통령은 준비된 원고 외에도 즉석에서 기업인들의 고충을 묻는 등 격의 없는 소통을 시도했다. 특히 AI 미래기획수석으로 영입된 하정우 수석이 배석한 것을 두고, 재계에서는 현 정부가 AI 및 미래 산업 육성에 얼마나 큰 공을 들이고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표 ’5극 3특’ 띄우고 기업 팔 비틀기 대신 ’투자 보따리’ 유도
과거 정부들이 대기업에게 준조세 성격의 기금을 요구하거나 일방적인 고용 할당을 압박했던 것과 달리 이번 간담회는 지방 소멸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비즈니스 파트너’로서 기업을 대우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4일 10대 그룹 총수들을 만나 꺼내 든 카드는 ’압박’이 아닌 ’설득’과 ’지원’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배경이다.
무엇보다 이 대통령이 강조한 ’5극 3특’ 체제는 전국을 5개의 초광역 메가시티(5극)와 3개의 특별자치도(3특)로 재편하여 수도권 일극 체제를 타파하겠다는 구상이다. 핵심은 기업이 지방에 투자할 수밖에 없는 유인책을 만드는 것이다.
나아가 이 대통령이 "서울에서 거리가 먼 지역을 가중 지원하는 제도를 법제화하겠다"고 밝힌 것은 기업들의 지방 투자 리스크를 정부가 재정적으로, 제도적으로 보전해주겠다는 강력한 시그널로 풀이된다. 지방 이전 기업에 대한 법인세 감면, 상속세 공제 요건 완화, 파격적인 부지 제공 등이 패키지로 묶일 가능성이 높다.
재계가 내놓은 300조 원 지방 투자 계획도 이러한 정부의 정책 기조에 대한 화답이자 기업들 스스로도 수도권의 높은 비용 구조와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지방 거점 확보가 필요하다는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분석된다.
특히 삼성의 반도체 클러스터 배후 단지 조성, 현대차의 지방 미래차 생산 라인 전환, SK와 LG의 지역 거점 배터리 및 소재 공장 증설 등이 이번 300조 투자의 핵심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화와 HD현대 등 방산·조선 기업들 역시 기존 지방 사업장의 설비 고도화와 스마트 팩토리 전환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할 예정이다.
전문가들은 이번 간담회를 통해 정부는 ’균형 발전’이라는 국정 과제의 동력을 얻었고, 기업은 ’규제 완화’와 ’세제 혜택’이라는 실리를 챙기는 ’윈윈(Win-Win)’ 모델이 구축되었다고 평가한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대규모 투자가 AI 로봇 도입 등 자동화 설비에 집중될 경우 고용 창출 효과가 기대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한다. 이에 대해 류진 한경협 회장이 "서비스 산업 육성과 현장 맞춤형 교육 훈련"을 강조한 것은 이러한 ’고용 없는 성장’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포석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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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일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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