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애플 때린 EU…단순하게 보면 위험한 이유 [IT큐레이션]

유럽연합(EU)이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과 애플을 대상으로 디지털시장법(DMA)을 위반했다며 강력한 규제 조치를 예고했다.
EU 집행위원회는 19일(현지시간) 알파벳의 구글 검색 및 구글 플레이가 DMA 규정을 어겼다는 예비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애플에는 iOS 생태계의 상호운용성 개선을 법적 구속력 있는 결정문으로 명령했다.
지금의 조치는 지난해 3월 발효된 DMA 시행 이후 첫 조사 결과다. 빅테크 기업의 시장 지배력 남용을 억제하려는 EU의 의지를 보여준다는 평가다. 나아가 미국과 유럽의 돌이킬 수 없는 ICT 대서양 동맹의 균열은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한편 DMA는 알파벳, 애플 (NASDAQ:AAPL), 아마존 (NASDAQ:AMZN),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바이트댄스 등 7개 ’게이트키퍼’ 기업을 지정해 시장 지배력 남용을 방지하는 법안으로, 이 중 5개가 미국 기업이다.
이번 조치로 EU와 미국 간 갈등이 한층 격화될 것이라는 말이 나오는 배경이다. 다만 그 이면에는 거대 빅테크의 생태계 장악과 해체 및 스타트업의 풍부한 잠재력을 발휘하는 등의 복잡한 고차방정식도 깔려있다. 이번 이슈를 단순하게 ’유럽의 미국 빅테크 때리기’라는 일차적 관점에서 소비하면 핵심을 놓칠 수 밖에 이유다.
사진=연합뉴스
구글, 자사 서비스 우대와 결제 제한으로 최대 51조원 벌금 위기
EU 집행위는 구글 검색이 항공권, 호텔, 쇼핑 등 검색 결과에서 알파벳의 자체 서비스를 경쟁사보다 우선 노출시키는 ’자사 서비스 우대’(Self-Preferencing) 행위를 지적했다. DMA의 "서비스를 투명하고 공정하며 차별 없이 취급해야 한다"는 조항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됐다. 나아가 구글 플레이는 앱 개발자가 사용자에게 대체 결제 수단이나 저렴한 구매 옵션을 안내하지 못하도록 기술적으로 제한하는 ’다른 결제방식 유도 금지’(anti-steering) 관행을 문제 삼았다.
DMA 위반이 최종 확정되면 알파벳은 전 세계 연간 매출의 최대 10%에 해당하는 벌금(약 350억 달러, 51조 원)을 부과받을 수 있으며, 반복 위반 시 20%까지 확대될 수 있다.
다만 EU는 "블록버스터 벌금" 부과보다는 알파벳과 협상해 시정 조치를 유도하겠다는 입장이다. 최소한의 여지는 남겨둔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파국은 파국이다.
중국에서 아이폰16을 구매하려는 행렬. 사진=연합뉴스
애플 iOS 상호운용성 강제, 당장 벌금은 없지만 긴장 고조
애플도 철퇴를 맞았다. EU는 애플을 상대로 별도의 DMA 결정문을 채택, iOS 운영체제가 삼성 스마트워치, 타사 헤드폰 등 다른 브랜드 기기와 호환되도록 ’상호운용성’을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테레사 리베라 EU 집행위 수석부위원장은 "효과적인 상호운용성은 소비자에게 더 나은 선택을 제공하고, 개발자들에게 개방적인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며 이번 결정의 의의를 강조했다.
애플에 대한 이번 조치는 구글과 달리 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조사 단계가 아닌, DMA 준수를 위한 구체적 이행 명령이다. 따라서 당장 과징금 부과로 이어지지는 않지만, 애플이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추가 조사와 제재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구글과 비교해 다소 가벼운 제재다. 그럼에도 애플은 반발하고 있다. "유럽 사용자를 위한 혁신을 저해하고, 경쟁사에 새로운 기능을 무료로 제공하도록 강요한다"고 비판했다.
사진=갈무리
흔들리는 ICT 대서양 동맹
EU의 이번 조치로 구글은 막대한 벌금 리스크에 직면해 시정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높고, 애플은 iOS 생태계 개방 여부를 놓고 장기적인 대응 전략을 고민할 전망이다.
충돌이 불가피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최근 구글, 아마존 등 자국 빅테크에 불리한 EU 규제를 "일방적·반경쟁적"이라며 비판하고, 관세 부과를 포함한 보복 조치를 예고한 바 있다. 그런 이유로 외신은 EU의 이번 조치가 양측의 경제적·정치적 대결로 번질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ICT 대서양 동맹이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는 극단적인 말도 나온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과 EU는 흔들리지 않는 ICT 대서양 동맹을 강화한 바 있다. 그러나 구글 등 실리콘밸리 민간 기업들이 성장해 유럽의 ICT 영토를 정복, 데이터 권한의 독점현상까지 벌어지자 EU는 극약처방에 나서기 시작했다.
EU 입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것은 미국과 손을 잡고 국가와 국가의 정보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런데 2000년대 초반부터 실리콘밸리 민간 기업들이 그 틈바구니를 뚫고 들어와 힘의 균형추를 무너트리는 것은 용인하기 어려웠다. 나아가 ICT 디지털 영토까지 실리콘밸리 민간기업에 넘어가자 처음에는 ’잊혀질 권리’로, 이후에는 역대급 과징금 폭탄을 던지며 발버둥을 쳤다.
한편으로는 유럽의 자체 ICT 플랫픔을 구축해 실리콘밸리의 진격을 막아서기도 했다. GDPR은 물론 지난해 제정된 EU의 세계 최초 AI법안, AI 안전포럼 등도 긴 호흡으로 보면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유럽 AI ICT 시장 침탈을 막으려는 큰 그림으로 봐야 한다.
DMA는 이러한 EU의 ’핵심 전략무기’다. 구글과 애플 등의 역내 시장 장악력을 파훼하는 극단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중심주의를 추구하는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이를 호락호락 받아들일 가능성은 낮다. 심지어 1기와 달리 2기 트럼프 행정부는 트럼프 중심 공화당 세력과 실리콘밸리 빅테크의 연합정권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DMA 조치에 부합되는 강력한 반격은 물론, 그 외 철강이나 자동차 등 다른 산업과의 연계 플레이로 EU에 보복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 사진=연합뉴스
상호운용성의 미묘한 장면
유럽의 DMA에 구글 및 애플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실리콘밸리와의 연합정권을 꾸린 트럼프 행정부가 강력한 반격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다만 그 이면에는 전혀 다른 이야기도 나온다. 바로 미국 일각에서 "미국이 DMA를 오히려 지지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중 하나인 와이콤비네이터(Y Combinator)는 최근 백악관을 향해 DMA를 공개적으로 지지할 것을 촉구하는 서한을 보냈다. 와이콤비네이터는 미국의 유명한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AC)로, 초기 단계의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성장시키는 데 초점을 맞춘 프로그램을 운용하는 ’혁신 조각가’로 유명하다.
지난 미국 대선 기간 트럼프 진영에 200만달러를 기부한 곳이기도 한 와이콤비네이터의 공공 정책 총괄 루터 로우는 서신을 통해 “우리는 백악관이 유럽의 디지털 규제에 대한 입장을 재조정할 것을 정중히 촉구하며, 혁신을 방해하는 조치와 혁신을 촉진하는 조치 사이의 명확한 경계를 그을 것을 요청한다"고 명시했다. 유럽의 DMA가 미국의 혁신을 더욱 극대화시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DMA가 AI, 검색, 소비자 앱 분야에서 미국 스타트업들에게 기회를 열어주는 한편 거인들이 작은 벤처들을 배제하지 못하게 막아준다고 봤기 때문이다. 당장 와이콤비네이터는 애플의 경우 경쟁사들이 생성적 AI 음성 비서를 시장에 출시한 후 몇 년이 지난 2027년까지 LLM 기반 시리 버전을 출시할 예정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이것이 경쟁 압박의 부족을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폐막한 MWC25에서도 비슷한 이슈가 화제였다. 디지털 개방성을 위해 협력하는 연합체인 개방형 디지털 생태계 연합(Coalition for Open Digital Ecosystems, CODE/코드)이 MWC25가 열리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 모여 차세대 디지털 인프라와 디지털 경제 성장을 위해 그 어느때보다 상호운용성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기 때문이다. 거인들의 권익을 지키는 것이 아닌, 오히려 희석을 통해 생태계의 상호운용성을 활발히 끌어올려 시장 전체의 개방성과 방향성을 재정립하자는 취지다.
물론 지금의 분위기는 유럽이 DMA로 실리콘밸리 기업을 압박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미국이 강하게 맞서는 장면이 유력하다. 그러나 빅테크의 혁신에만 방점을 찍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빅테크가 자유롭고 창의적인 생태계를 억압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상호운용성을 다시 해석한다면 전혀 다른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난 대선 기간 무려 8900만달러를 기부한 안드리슨 호로위츠(a16z)의 리틀 테크 의제(Little Tech Agenda)가 대표적이다.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과 벤 호로위츠(Ben Horowitz)가 주도하는 a16z는 "미국이 20세기 동안 기술(Technology), 경제(Economy), 군사(Military)라는 세 가지 차원에서 세계를 선도했으며 이를 21세기에도 지속하려면 스타트업이 필수적"이라며 규제 및 세금, 정책적 방안에서 잠재력이 있는 스타트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며 리틀 테크 의제를 지난해 어필한 바 있다.
진짜 혁신은 모든 것을 가진 거인이 아니라 끊임없이 도전하는 스타트업의 용기에서 비롯된다. 그 관점에서 DMA가 미국과 유럽의 혁신 대결의 마중물이 아닌, 글로벌 ICT 업계의 새로운 잠재력 창출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미국 내부에서 조금씩 힘을 받고 있다. 빅테크의 혁신을 가로막는 것이 아닌, 과도한 시장 장악력을 해체해 더 풍부한 잠재력을 끌어낼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는 한국의 플랫폼법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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