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 냉동육 초대형 투자사기에 경찰 부실 수사 의혹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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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냉동육을 담보로 투자하면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말에 현혹돼 투자했다가 투자금을 돌려받지 못한 이른바 ‘냉동육 담보 투자사기’ 사건이 발생했다. 현재까지 드러난 피해자만 300여 명, 피해 금액은 총 2000억원으로 추정될 정도로 초대형 사기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를 본 투자자들이 경찰의 부실수사를 지적하고 나서면서 사건의 파장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지난 4월, 경기남부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는 고소장을 접수받아 사건 주범인 축산물 유통업체 전 대표 박아무개씨를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 또 경찰은 투자자를 모은 온라인 및 오프라인 투자업체, 냉동창고업체 관계자 등 총 20여 명을 입건했다.
유통업자 박씨 등은 고기를 담보로 투자자를 모집해 투자금을 받았다. 냉동육을 값이 쌀 때 대량으로 구매해 창고에 보관한 뒤 가격이 올라가면 판매해 얻은 수익을 투자자에게 이자 형식으로 나눠주는 방식이다. 유통업자가 냉동된 고기를 냉동창고에 맡기면 창고업자는 ‘담보확인증’을 발급해 준다. 이때 발급된 ‘이체확인증’을 근거로 투자할 사람을 모집하는 것이다.
투자자들 “처음부터 범행 위한 조직 설계”
사건 주범인 박씨는 서울 강남에서 축산물 유통업체를 운영했다. 박씨는 “수입 냉동육을 담보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투자자를 모았다. 박씨의 제안에 투자를 결정한 투자자들은 매매·양도 담보를 설정했다. 경기 용인 소재 냉동창고 업체로부터 이체확인증을 받았고, 이 확인증을 통해 냉동육이 창고 안에 잘 보관돼 있음을 확인했다.
이때 일부 투자자는 창고를 찾아가 이체확인증과 똑같이 냉동육이 실제 수량만큼 잘 보관돼 있는지 재고 실사를 진행하려 했다. 그러나 창고업체 측에서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수입 냉동육) 실물 재고 조사가 어렵다”고 답변하면서 진행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당초 박씨의 약속과 달리 원금 변제와 이자 지급은 계속 지연됐다. 박씨와 연락 또한 닿지 않았다. 수상한 낌새를 느낀 투자자들이 지난 4월 냉동창고 업체를 다시 찾아 재고 실사를 요청했다. 이번에도 직원들이 실사를 강력히 거부하자 투자자들은 냉동창고 대표에게 직접 연락을 취했고, 대표와의 긴 실랑이 끝에 수입 냉동육과 관련된 전산상의 냉동육 재고를 확인할 수 있었다.
냉동창고 안을 둘러본 투자자들은 망연자실했다. 전산에는 분명 약 1만2106톤의 냉동육이 있다고 기록돼 있지만, 실제 냉동창고에서 확인한 재고는 고작 200여 톤뿐이었다. 박씨가 담보물을 허위 계상하거나 창고업자와 짜고 허위 이체확인증을 발급하는 수법으로 사기 행각을 벌였던 것이다. 투자자들은 박씨를 사기와 사기방조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에 따르면 고소가 처음 접수된 지난 4월 이후 현재까지 누적 고소인 수는 100명을 넘어섰다. 피해 금액 역시 사건 초기 800억원에서 지금은 2000억원까지 늘어났다.
피해를 본 투자자들은 박씨가 처음부터 범행을 위한 조직을 설계하고, 창고업체 직원들을 구성원으로 가입시켜 조직적으로 사기 행각을 벌였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박씨가 약속한 수익금을 지급할 의사나 능력이 없음에도 피해자들에게 접근해 자신을 수입 냉동육 도매사업을 하는 사람으로 소개했다고 한다.
투자자들은 박씨가 수입 냉동육 매입 대금 명목으로 돈을 받더라도 실제로는 냉동육을 매입하지 않거나, 동일한 수입 냉동육에 대해 타 업체들로부터 매입 대금만 중복해 받은 것을 확인했다. 다른 피해자들에게도 같은 수법으로 수입 냉동육 매입 대금 등을 받은 뒤 속칭 ‘돌려막기’ 방식으로 약속한 수익금을 지급하는 것처럼 가장하다가 잠적하는 방법으로 피해자들을 편취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자들은 박씨가 “피해자들에게 돌려줄 돈이 없다”고 버티고 있으나, 박씨가 현재 국내 대형 로펌을 두 곳이나 자신의 변호인으로 선임했다며 분노하고 있다. 수억, 수십억원에 달하는 변호사 비용을 피해자들로부터 편취한 돈으로 지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450억원 상당의 피해를 본 A씨는 “박씨는 자신이 운영한 유통업체 직원들을 통해 피해자들에게 수입 냉동육 매입을 요청하고, 지인(냉동창고 대표)을 통해 허위 이체확인증을 발급해 매매 대금을 불법으로 편취했다”면서 “(박씨는) 애초 피해자들에게 약속한 금원을 지급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 창고업체들을 사기 조직에 가입시켜 투자자들을 대상으로 조직적으로 사기 행각을 벌였다”고 분개했다.
경찰은 박씨를 출국금지하는 한편, 업체와 주거지 압수수색 및 관계자 등에 대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시사저널이 취재에 나서자 “수사 중인 사안이라 정확히 알려줄 수 없다”며 “이르면 내달 즈음에 수사가 마무리될 것 같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경찰의 부실수사가 도마에 올랐다. 투자 피해자들이 경찰의 부실수사를 지적하고 나서면서 수사를 둘러싼 의혹이 더 크게 불거지고 있다. 최근 경기남부경찰청은 검찰로부터 보완수사 지시를 받은 것으로 시사저널 취재 결과 확인됐다. 투자자들이 “경찰이 핵심 증거에는 손도 못 댔다”는 비판을 제기하고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결과적으로 증거인멸 시간만 벌어준 셈”
현재 경기남부청은 이 사건에 대한 보완수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은 6개월간 진행한 수사 자료 등을 토대로 10월10일 검찰에 사건을 넘겼다. 그러나 검찰은 “박씨가 빼돌린 돈에 대한 계좌추적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소식을 접한 투자자들은 경찰 수사에 회의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투자자들은 경찰이 이 사건을 반년 넘게 수사했지만, 박씨의 사기를 입증할 핵심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들은 경찰이 ‘알맹이 없는 수사’를 하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투자자들은 사건 주범인 박씨가 직원 및 위장계열사 등을 통해 마련한 사기 금액을 밝혀내는 데 경찰이 중요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초대형 사기 사건임에도 경찰이 계좌추적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자 투자자들은 “피해금액을 복구할 방법이 사라졌다”며 절망하고 있다.
200억원 상당의 피해를 보았다는 B씨는 “경찰이 피해금액을 찾을 의사가 있으면 사건 접수 당시부터 투자자들이 제공한 정보만으로도 박씨의 계좌추적 등을 통해 자금의 행방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고소인 조사를 통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인데도 하지 않았고, 면담을 요청해도 답변마저 없었다”면서 “검찰에서 보완 지시가 내려왔다는 건 지난 7개월간 부실하게 수사한 결과가 아니겠느냐”고 분개했다.
그는 이어 “결과적으로 사건의 실체적 진실 파악에 소홀한 탓에 박씨에게 증거를 인멸하도록 시간을 벌어준 셈이 됐다”고 주장하며 “박씨는 지금도 직원 및 주변인들과 입을 맞추고, 소액 피해자들에게는 손해액의 10% 정도에서 합의를 통해 소송 취하 및 ‘처벌불원서’를 제출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투자자들은 박씨의 친인척과 임직원, 위장계열사 등을 통해 은닉한 계좌의 정보를 경찰에 제공했음에도 “박씨의 자금을 찾지 못했다”는 경찰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투자자들에 따르면, 경찰은 투자 피해금액을 박씨의 돌려막기에 의해 발생한 손실로 보고 있다.
박씨가 다른 투자자들에게도 같은 수법으로 수입 냉동육 매입 대금 등을 받은 뒤, 돌려막기 방식으로 약속한 수익금을 지급하는 것처럼 위장하다가 잠적하는 방식을 통해 투자금을 편취한 것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투자자들은 “만약 박씨가 경찰의 주장처럼 돌려막기를 했다면, 후순위 투자자의 투자금으로 선순위 투자자의 투자금과 수익을 지불한 경우”라며 “그러나 대부분의 투자자들은 투자금과 수익을 재투자했기에 돌려막기가 절대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를 방증하는 증거로 투자자들은 작년 하반기부터 사기 사건이 발각된 올해 4월2일까지, 박씨에게 650억원 상당의 자금이 순유입된 것을 확인했다. 또 박씨가 도피 중에도 사기친 금액이 50억원을 훌쩍 넘는다는 점도 발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투자자들은 박씨가 냉동육 사기를 저지르기 위해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범행을 설계했다고 주장했다. 투자자들에 따르면, 박씨는 지인으로부터 추천받은 9명으로부터 명의를 대여받아 6개의 명의대여법인(유통법인)과 3개의 냉동창고 법인을 설립했다. 20여 개의 위장계열사도 설립했다. 이후 8년에 걸쳐 조직적으로 사기 행각을 일삼았다고 설명했다.
투자자들은 이제라도 경찰이 고소인 조사를 통해 박씨가 숨긴 자금의 행방을 찾는 노력을 기울여주길 바라고 있다. 그러면서 추적하지 못한 자금을 돌려막기로 발생한 손실인 것처럼 두루뭉술하게 넘어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경찰 “매뉴얼에 따라 재수사 진행하고 있어”
이와 관련해 경찰은 매뉴얼대로 수사를 진행해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경기남부청 관계자는 “해당 사건을 접수받을 때부터 지금까지 수사팀은 매뉴얼대로 수사를 진행해 왔다”면서 “검찰의 보완수사 지시는 경찰 수사가 잘못됐다는 게 아닌, 사안을 좀 더 면밀하게 살피라는 해석으로 봐야 한다”고 해명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수사 중인 사안이라 깊게 말씀드릴 수 없지만, 피해자들이 주장하는 계좌추적 등과 관련해 종합적인 증거와 객관적인 사실을 토대로 수사를 계속 진행하고 있다”며 “검찰 측에서 지적한 부분을 적극 검토하며 보완수사를 신속히 진행해 피해자들의 빠른 피해 회복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시사저널은 박씨의 입장을 듣기 위해 연락했지만, 기존 휴대폰 번호는 삭제된 상태로 나왔다.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조사를 받고 있는 상태인 박씨는 현재 피해자는 물론 같은 회사 관계자들과도 연락 두절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박씨를 조사 중인 경찰은 연락을 취하고 있다고 전해 왔다.
시사저널은 기존 연락처를 삭제한 박씨의 회사 임원 및 주변 관계자 등에게 박씨의 행방을 찾기 위해 계속 수소문했지만 결국 연락이 닿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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